혼자 걷는 길[내가 만난 명문장/김주원]

6 days ago 5

“길이 보이면 걷는 것을 생각한다. 길 끝에는 무엇이든 있고 무엇과도 만나기 때문이다.”

-칼릴 지브란 ‘길이 보이면 걷는 것을 생각한다’ 중

김주원 대한민국발제축제 예술감독·부산오페라하우스발레단 예술감독

김주원 대한민국발제축제 예술감독·부산오페라하우스발레단 예술감독
표지판 하나 없는 길 앞에 서면 누구나 막막함이 먼저 밀려온다. 이 길이 맞는 것인가, 아니면 멈춰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결국 나는 걷는 쪽을 선택한다. 다시 일어나 신발 끈을 단단히 동여매는 일, 손끝에서 시작된 그 단순한 결심 하나가 내 인생의 많은 순간을 움직여 왔다. 혼자 멈춰 서 있는 듯한 고요 속에서 거울 속 나를 보며 마음이 조급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일수록 칼릴 지브란(1883∼1931)의 시를 떠올리며 내 앞의 순간에 집중하려 한다. 벗어날 수 없을 때도, 방향이 보이지 않을 때도 그저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 부딪히다 보면 이상하게도 막막했던 길이 하나둘 윤곽을 드러낸다. 길은 걷는 자에게만 보이는 법이다.

오래 걷다 보면 발바닥엔 굳은살이 박인다. 처음엔 따갑고 쓰라림을 느끼게 했던 길도, 그 과정을 견뎌낸 사람에겐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다. 꽃길이든 가시밭길이든, 발에 묻은 흙과 땀이 다음 길을 걷는 힘이 된다. 인생은 그런 길을 혼자 걷는 일과 다르지 않다. 누구도 대신 걸어줄 수 없고, 누구의 발자국도 내 길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더 외롭고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끝이라 생각했던 지점에서 다른 길이 열리고, 익숙한 풍경이 반복되는 듯해도 그 길은 매번 다르다.

오늘도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한 걸음 내딛는다. 길 끝에서 무엇을 만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그 알 수 없는 기대가 나를 다시 걷게 만든다. 두려움보다 더 무서운 건 멈춰 선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마주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길 위에 선다.

김주원 대한민국발제축제 예술감독·부산오페라하우스발레단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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