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겪고 있는 수난은 성공한 창업 기업인의 삶이 한국에서 어떻게 ‘소비’되는 지에 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의 위상은 불과 몇 년 사이 바닥을 모를 만큼 추락했다. 카카오톡이라는 국민 메신저를 만들어 빅테크의 안방 공습을 막아냈던 혁신가 이미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검찰은 그를 부도덕한 자본시장의 악(惡)으로 낙인찍었다.
잔혹한 검(檢)의 칼날
지루한 심문의 반복 끝에 검찰이 구형한 형량은 아연실색할 정도로 무거웠다. 징역 15년에 벌금 5억원. 언론에 형량이 공개된 것 중 최근 5년 내 김범수와 비슷한 형량을 받은 사례는 두 건이다. 전청조와 이화수. 재벌 3세를 사칭해 약 30억원대 투자 사기를 벌인 이와 뇌물수수 및 대북송금 연결 혐의를 받은 이에게 검찰은 15년형을 때렸다. 세 명의 이름을 병렬로 세워놓고 아무리 읊어봐도 중형의 함의가 가진 공통점을 쉽사리 찾기 어렵다. 게다가 법원은 1심에서 김범수를 옭아맨 검찰의 법리를 조목조목 반박하고는 무죄 판결을 내렸다.
아직 1심 판결일 뿐이고, 검찰이 항소 결정을 내린 만큼 김범수를 향한 ‘죄와 벌’의 정도를 재단하기에는 이르다. 그러나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검찰은 왜 이런 결정을 내린 걸까. 법조계에선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였을 것이란 추정이 나온다.
검찰은 그 나름의 명분과 조직 논리에 따랐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검찰이 이 같은 귀결의 사회적 파장을 얼마나 깊이 고민했을지에 의문 부호를 붙이지 않을 수 없다. 검찰 항소문에 또다시 난자당할 김범수를 보면서 대한민국의 어느 청년이 창업가를 꿈꾸겠나.
지금 한국은 인공지능(AI) 시대의 격랑 한가운데에 있다. 엔비디아로부터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 개 공급을 확약받으며 AI 3대 강국을 위한 기틀을 마련했지만, 이를 활용할 인재풀은 좁디좁다. 오죽했으면 미국의 한인 벤처캐피털(VC) 창업자가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하려면 K뷰티가 최적”이라고 했을까.
美 창업가에 열광하는 청년들
인재를 창업으로 이끄는 루트는 규제를 푼다고, 인센티브를 준다고 해서 단숨에 만들어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영웅 만들기’까지는 아니어도 성공한 창업가의 경험 전수가 필수다. 그러나 AI 이전 플랫폼 시대의 성공한 창업가 대부분이 장막 뒤로 숨어들었다. 김봉진 배달의민족 창업자는 싱가포르로 터전을 옮겼고, 김범석 쿠팡 창업자는 미국에서 모든 회의를 화상으로 주재한다.
얼마 전 알렉산더 카프 팰런티어 최고경영자(CEO)가 서울 성수동에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팰런티어 로고가 박힌 10만원 훨씬 넘는 티셔츠 등 ‘굿즈’를 사려는 이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오랜 기다림 끝에 제품을 받아 든 이는 눈물까지 보였다. ‘5조달러(시가총액)의 사나이’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강남 한복판에서 수백 명의 광팬에게 둘러싸인 채 바나나맛 우유를 돌렸다. 그들을 본받아 글로벌 창업을 꿈꾸는 청년이 많이 나올 수 있다면야 한국 창업 기업인의 이미지가 만신창이가 된들 무슨 상관이겠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 청년에게 ‘창업의 롤모델’인지, ‘서학개미의 우상’인지는 구분하기 어렵다. ‘김범수의 수난’을 그의 개인사(事)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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