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년연장, 노동유연화와 같이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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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년연장, 노동유연화와 같이 가야

국내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청년들이 해외 기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최근 5년간 정부 지원사업을 통해 해외에서 일자리를 구한 20대 청년이 2만 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그 과정엔 그늘도 있었다. 얼마 전 해외 취업 박람회에 다녀오겠다던 대학생이 동남아시아 범죄조직에 납치·고문당해 세상을 등진 사건은 우리 청년들의 불안한 취업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즉시 취업, 고수익 보장’ 같은 허위 구인 광고에 속아 피해를 본 대다수가 취업난에 내몰린 청년이다. 만약 그들이 국내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았다면 이 같은 비극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청년 고용 지표는 오래전부터 빨간불이 켜졌다. 청년 취업자는 2022년 11월 이후 35개월 연속 줄었고, 일하지 않고 그냥 쉰 청년도 수개월째 40만 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20대 근로자 중 비정규직은 10년 새 11%포인트나 늘었다. 이처럼 청년 일자리 문제는 경기 침체보다 경직된 노동시장이 만들어낸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한 측면이 크다.

하지만 최근 정책들은 이런 문제 인식과는 정반대 흐름이다. 노란봉투법에 이어 법정 정년 연장과 주 4.5일 근무제 도입 논의까지 모두 노동 유연성을 지금보다 더 떨어뜨리는 규제강화형 입법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정년 연장은 임금 연공성과 고용 경직성이 높은 우리 노동시장에 막대한 부담을 줄 것이 자명하다. 연공급 임금체계에 편중된 기업 현실에서 일률적으로 정년을 늘리면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조차 인건비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 한국개발연구원이 ‘우리나라에서 법정 정년 연장은 굉장히 무거운 역기를 들어 올리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 큰 문제는 정년 연장의 혜택을 받는 고령자가 많아질수록 가뜩이나 심각한 청년 취업난이 더 악화한다는 점이다. 한 번 채용하면 정년까지 내보내기 어려운 경직적 고용구조 속에서 조직의 고령화가 빨라지고, 그만큼 청년들의 일자리 진입 기회는 더 줄어든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여 년간 상대적으로 근로조건이 좋은 노동조합이 있는 대기업 정규직에서 고령자 고용은 777%나 늘었지만, 청년 고용은 오히려 2%가량 줄었다.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지금, 고령자가 더 오래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데 반대하는 이는 없다. 다만, 정년 연장이든 퇴직 후 재고용이든 고령자에게 일할 기회를 주면서 청년 일자리도 함께 늘리려면 임금 유연성과 고용 유연성을 지금보다 더 높이는 노동 유연화 조치가 반드시 같이 이뤄져야 한다.

우선 임금 유연성을 높이려면 오래 일한 사람이 많은 임금을 받는 연공급 임금체계를 일의 가치나 성과가 높은 사람이 더 많은 임금을 받는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로 바꿔야 한다. 임금체계 개편의 길목을 막고 있는 취업규칙 변경 절차를 노동조합의 ‘동의’에서 ‘의견 청취’만으로도 가능하게 개선해야 한다. 고용 유연성을 높이려면 정규직 과보호 울타리를 걷어내야 한다. 업무능력 부족 등 사유로 직원을 회사에서 내보내거나, 사업장 내에서 직원의 직무나 부서를 다시 배치할 때 적용하는 경직적 고용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

역설적으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년 연장에 찬성하는 청년 비율이 의외로 높다. ‘취업 준비에 필요한 금전적 부담’ 또는 ‘취업 전까지 가족을 부양할 사람이 필요해서’ 등이 이유다. 청년들이 취업난과 경제적 불안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부모의 장기근속에 기대는 씁쓸한 현실을 보여준다. 미래 세대의 자립과 성장을 위해서라도 정년 연장은 반드시 노동 유연화와 함께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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