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김철중]1996년 韓 로봇 축구 vs 2025년 中 로봇 마라톤

1 week ago 4

로봇 축구 종주국은 한국
로봇 혁신의 ‘판’ 깔아준 中 정부

김철중 베이징 특파원

김철중 베이징 특파원
지난달 19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휴머노이드 로봇 하프마라톤 대회’를 현장에서 지켜봤다. 1등 로봇이 결승선을 통과한 순간보다 다른 로봇이 출발선에서부터 고꾸라지던 상황이 더 인상 깊었다.

바닥에 누운 이 로봇은 2분여가 지나서야 겨우 일어섰다. 숨죽여 지켜보던 관람객들도 일제히 “자유(加油·힘내라)”라고 기를 불어넣었다. 행사장 곳곳에서 세계 최초 로봇 마라톤을 열었다는 긍지와 조만간 로봇 최강국이 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대한민국도 로봇 분야에서 세계 최초 장면을 만들어 낸 기억이 있다. 1996년 KAIST(카이스트)에서 당시 이 대학 전자전산학과의 김종환 교수(현 명예교수)가 창안한 세계 최초 로봇 축구대회가 열렸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사각형 로봇들은 지금의 휴머노이드 로봇과 비교하면 볼품없었지만, 당대의 로봇공학과 인공지능(AI) 기술의 집합체였다.

로봇 축구는 1999년부터 KAIST 학생들을 주인공으로 한 TV 드라마 ‘카이스트’를 통해 유명해졌다. 이듬해 세계로봇축구연맹(FIRA)이 설립됐고, 지금까지도 전 세계를 돌며 매년 대회를 열고 있다.

다만 로봇 축구 종주국의 위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국보다 1년 늦은 1997년 시작한 일본의 ‘로보컵’은 소니 등 대기업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창립 몇 년 만에 FIRA를 제치고 가장 많은 팀이 참가하는 대회로 성장했다. 또 국내에서는 이공계 기피 현상, 우수 학생이 의대로만 몰리는 ‘의대 광풍’이 불어닥치며 로봇에 대한 정부와 대학의 관심도 줄었다.

한국이 주춤하는 사이 중국은 그 자리를 빠르게 채워 나갔다. 로봇 축구대회에서 2000년대 이후로는 중국 연구팀의 우승 소식이 자주 전해졌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여는 국제로봇올림피아드에서도 중국의 성과가 더욱 돋보인다.

2025년 중국은 세계 최초로 인간과 로봇이 함께 달리는 마라톤 대회를 열 정도로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의 강국으로 성장했다. 당국의 전폭적이고 꾸준한 보조금 및 세제 혜택이 성장 비결 중 하나다. 다만 중국 정부가 기업에 주는 막대한 보조금과 세제 혜택만을 성공 비결로 얘기해서는 안 된다는 게 중국에 나와 있는 한국의 경제·과학계 인사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중국은 전기차, 로봇, 항공우주 등 첨단 과학기술 분야를 성장시키기 위해 정부·기업·학계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국내 기업의 한 임원은 “중국이 종(縱)과 횡(橫)으로 전력을 다한다는 게 진짜 무섭다”고 했다. 종으로는 업체 간의 경쟁과 줄 세우기가 어떤 나라보다 치열하고, 횡으로는 정부·산업계·학계가 서로 돕고 이끌어주는 데 주저함이 없다는 의미다.

휴머노이드 로봇 하프마라톤 대회를 주최한 베이징 이좡 경제기술개발구 관계자는 대회 취지와 관련해 “지금껏 연구실에 머물러 있던 휴머노이드 로봇이 이제 공장과 가정을 향해 나아가야 할 시기”라며 “로봇의 안전성, 내구성 등을 실제 환경에서 테스트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로봇들이 도로를 3시간 이상 달리며 다양한 데이터를 축적할 기회를 정부가 직접 나서 마련한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4시간 25분 56초로 완주에 성공한 휴머노이드 로봇 ‘싱저(行者) 2호’를 개발한 기업 ‘주오이더’의 리칭두(李清都) 창립자는 “오랜 난제였던 로봇의 지속적인 이동, 상·하체 통합 기술 발전 등을 점검할 계기가 됐다”고 화답했다. 이번 대회를 중국의 로봇 굴기(崛起)를 과시하는 홍보 이벤트로만 볼 일이 아닌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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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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