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모노세키 항구에 내린 19세 소년의 앞을 눈빛 사나운 남자가 가로막았다. 독립군과 사상범을 잡는 고등계 형사였다. 입국 서류를 빼앗아 찬찬히 보더니 곧바로 경찰서로 끌고 갔다. 그리고 불순한 입국 의도가 있는 거 아니냐며 며칠간 자근자근 매질을 했다. 근거도 영장도 없었다. 억울했던 그 며칠이 트라우마로 남았을까?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고, 자신이 일본 국적을 취득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그 일이라고 실토했다. 일본은 상대적으로 급여가 많은 본토로 조선인 노동자들이 몰려오면 바닥 민심이 흉흉해질 수 있다는 우려로 입국을 꽁꽁 막았다. 공부를 더 하고 싶어 군청에서 일하던 사촌 형을 통해 경찰서장의 입국 허가증까지 받은 소년을 뜨겁게 환영해준 이유가 그거였다. 그런데 그 형사, 그 소년의 가능성을 상상이나 했을까? 46년이 흐르고 포브스는 그 소년을 ‘세계 4위’ 부자라고 발표한다.
그러던 일본이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조선에서 노동자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진주만을 공격하고 아시아 전역으로 전장을 확대하면서 무려 900만 명이 군인으로 동원됐다. 이젠 공장이고 광산이고 일할 사람이 없었고 결국 조선의 2300만 명 인구에서 무려 200만 명을 그곳으로 끌고 갔다. 그러면 조선의 소는 누가 키우나? 그렇게 끌고 간 조선인을 혹독하게 착취하던 일본, 항복 직후엔 ‘내가 언제 그랬냐’며 당장 돌아가라고 압박했다. 치가 떨리던 150만 명이 즉시 돌아왔다. 그 변덕, 이해 안 되는 바는 아니다. 해외로 진출한 일본인 700만 명이 ‘거지꼴’로 쫓겨 왔고 그들에게 일자리와 식량을 제공해야 하는 일본 정부 눈에 그 조선인들이 엄청난 짐으로 보였겠지.
일본이 한 행동을 미국이 하고 있다. 그리 낯선 일도 아니다. 미국은 중국인에게 샌프란시스코를 금산(金山)이라고 소개했다. 1860년 대륙횡단철도 공사를 시작하면서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자 값싼 중국인으로 메우려 든 거다. 금산이라 속아서 건너온 중국 노동자를 철도 공사장에 갈아 넣어 거금을 번 게 스탠퍼드대고 그렇게 번 돈으로 세운 게 스탠퍼드대다. 중국인을, 피와 땀으로 세워진 그 학교에 중국 학생이 몰려와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세상은 돌고 도는 건가? 그러다 경기가 나빠지자 ‘언제 그랬냐’며 중국인 배제법(1882년)을 만들어 입국을 차단했고 국적별 할당제(1924년)로 유럽 백인만 ‘골라’ 받았다. 그러다 다시 노동력이 부족해진 1965년 이민의 문을 열었다. 이후 분위기가 바뀌면서 도널드 트럼프가 닫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예전의 유럽 백인만 골라 받기와 비슷한, 인재만 골라 받기 전략인데 트럼프의 별난 행동과 무관하게 중국인을 제외한 핵심 인재는 적극적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핵심 이공계 유학생은 졸업하기도 전에 영주권을 발급해주고 거액의 연봉으로 주저앉히고 있다. 산업 자본주의 시대엔 원자재인 원유를 독점하더니 기술 자본주의 시대엔 원자재인 핵심 인재만 골라서 빼앗겠다는 건가? 가나 의대를 졸업한 사람이 가나보다 영국에서 더 많이 근무하고 있다면? 인구당 의사 수는 영국이 10배나 많은데 말이다. 그 가나 출신 영국 의사들은 누구 돈으로 공부했을까? 가나가 없는 살림에 소를 팔아 키워낸 인재들이다. 유럽연합(EU)으로 자유롭게 이주가 가능해진 2004년 이후 폴란드, 2007년 이후 루마니아에서 20대 중 3분의 1이 서유럽으로 사라졌다. 똑똑한 순서대로 갔을 그들의 교육비는 누가 댔을까?
천문학적 과외비를 쏟아부어 육성한 한국 수재들, 최고 수준은 무조건 미국 유학을 가면서 미국 내 유학생 숫자 3위 국가인 한국. 그렇게 미국 박사를 받은 수재들은 16년 가까이 동결된 교수 연봉과 연구 인력에 대한 처우를 보면서 돌아올 생각이나 할까? 아까 19세 소년의 이름은 신격호다. 훗날 그는 일본에서 번 재산을 달러로 바꿔 가난한 조국으로 가져왔지만 지금 미국에서 공부 중인 우리 인재들도 세월이 흐른 뒤 그렇게 할까? 의대만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카이스트 지원자가 3년간 61%나 증가했다는 소식에 잠시 흐뭇했지만 이 또한 죽 쒀서 남 주는 일 하는 게 아닌지 한숨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