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없이는 슈퍼마켓에서 물을 사는 것도 힘든 나라가 미국이다. 2023년 기준 미국에 등록된 차량은 국민 한 사람당 0.85대꼴인 2억8700만 대다. 매년 팔려나가는 신차가 1600만~1700만 대에 이른다.
자동차는 일자리 유지와 확대에도 중요하다. 전후방 기업을 포함해 400만 명의 미국인이 이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자동차산업 부흥을 부르짖으며 모든 수입차와 차량 부품에 25%의 관세를 매긴 배경이다. 그는 여기에 한술 더 떠 일본, 한국 등 미국 시장으로 자동차를 많이 수출하는 나라에 자국 자동차를 더 수입할 것을 종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계산대로면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스탤란티스 등 미국 자동차 브랜드가 수혜를 봐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미국과 무역 협상을 진행 중인 일본은 미국 내 자국 완성차 기업 공장에서 생산한 차량을 일본으로 역수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본 소비자들이 미국 차량에 관심이 없다 보니 이런 ‘꼼수’를 떠올린 것이다. 트럼프의 또 다른 표적인 한국도 내수 시장에서 미국 차가 인기가 없는 건 마찬가지다. 테슬라(2만9750대)를 제외하면 지난해 판매량 1만 대를 넘어선 미국 브랜드가 전무하다.
미국 시장에서의 타격 역시 현지 기업이 더 크다. 미국 자동차 ‘빅3’가 지난해 미국으로 수입한 물량은 221만 대로 미국 전체 자동차 수입량의 28%에 달한다. GM의 수입 물량이 123만 대로 일본 도요타(120만 대)보다 많다. 미국의 비싼 인건비 때문에 이익률이 낮은 차종을 멕시코, 캐나다 등에서 생산하는 것이 현실이다. 해외에서 만든 차량이 많이 팔릴수록 이들의 관세 부담이 커지는 구조다.
올해 북미 지역 자동차 생산량이 1490만 대로 지난해보다 6.9% 감소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관세 부담 등으로 차량당 평균 제조 비용이 3400달러(476만원) 늘어나는 상황이어서 빅3가 생산량을 늘리기 힘들 것이란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으름장’에 지레 겁먹을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성패를 가르는 것은 결국 품질과 혁신성이다.
송형석 논설위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