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최민희는 양자역학에서 무엇을 배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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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칼럼] 최민희는 양자역학에서 무엇을 배웠나

양자역학이라는 학문이 이토록 ‘핫’했던 적이 있을까. 미지의 과학이 한 국회의원의 발언으로 국민적 관심사가 됐다.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은 이번 국정감사 기간 도중 딸 결혼식을 국회에서 올려 논란이 일자 “양자역학을 공부하느라 신경을 못 썼다”는 황당한 해명을 내놨다. 피감 기관으로부터의 ‘수금’을 위해 자신이 결혼식 날짜를 맞춘 게 아니라는 얘기였다. 그는 “문과 출신인 제가 양자역학을 공부하느라 밤에 잠을 거의 못 잘 지경”이라며 결백을 호소했다. 덕분에 과학 논의가 실종됐던 국회 내에서 요즘엔 양자역학이 뜨거운 감자다.

[토요칼럼] 최민희는 양자역학에서 무엇을 배웠나

양자역학은 이공계에서도 가장 난해한 분야로 꼽힌다. 20년 전, 자연과학대 학부생 새내기 시절에도 전공하겠다는 사람이 극소수였다. 이 학문을 끝까지 파보겠다는 친구에게 이유를 묻자 “모든 게 불확실하기 때문에 매력적”이라고 답한 기억이 난다. 기본 원리를 살펴보면 수긍이 간다. ‘양자’란 에너지나 물질이 연속성 없이 아주 작은 단위의 입자들로 뚝뚝 끊겨 존재한다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빛은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다. 하나의 존재가 동시에 두 가지 성질을 가진다는 양자의 이중성은 고전물리학의 결정론적 세계관을 무너뜨렸다.

양자의 실마리가 명확히 잡힌 것도 아니다. 입자의 위치를 정확히 알면 속도를 알 수 없고, 속도를 파악하면 위치는 미지수가 된다. 모든 것이 동시에 확실할 수 없다는 ‘불확정성의 원리’다. 1930년대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실험은 이 개념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상자 안에 고양이와 청산가리병, 방사성 물질, 망치가 있다. 방사선이 감지되면 망치가 병을 깨 고양이가 죽는 구조지만, 열어보기 전엔 생사 여부를 알 수 없다. 즉 관측 이전에는 ‘살아 있음’과 ‘죽어 있음’이 동시에 존재한다. 입자 역시 여러 상태로 있다가 누군가가 관찰하는 순간 성질이 확정된다.

역설적으로 이런 특성 때문에 학자들은 양자역학에 매료됐다. 고전물리학처럼 결과가 예측되는 세계가 아니라 관찰자가 개입할 때 비로소 현실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천재 물리학자로 꼽히는 리처드 파인먼조차 “양자역학을 이해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다.

본의 아니게 ‘양자역학 홍보대사’가 된 최 위원장은 이런 학문의 속뜻을 이해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양자역학의 핵심은 정답이 없다는 데 있다. 모든 사물은 양면을 지니고, 진실은 관측자의 시선에 따라 달라진다. 정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기 진영의 정답이 반대 진영에선 오답일 수 있다.

그러나 최 위원장의 행보를 보면 마치 상자를 열기도 전에 모든 고양이의 상태가 정해져 있다고 착각하는 듯하다. 그는 과방위 회의장에서 질의하는 야당 의원의 마이크를 수시로 끄고 윽박을 지르기 일쑤다. 최근 MBC 비공개 업무보고 자리에선 본인 관련 보도에 불만을 제기하며 “친(親)국민의힘 언론”이라는 딱지를 씌웠다. 지난해 당내 온건파 의원들을 향해 “움직이면 죽는다. 제가 당원과 함께 죽일 것”이라는 극단적 발언을 쏟아낸 것도 ‘다른 상태의 공존’을 부정하는 데서 비롯된 게 아닐까.

논란이 여권까지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최 위원장은 통념상 과도한 축의금을 돌려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SNS에는 ‘조절 T세포’(과도한 면역 반응을 막는 세포) 이야기를 올렸다. 그는 “암세포는 교묘히 위장해 조절 T세포를 속이고, 면역 체계가 (정상 세포 대신) 암을 방어하게 된다”며 “우리 몸 면역세포들은 언제나 적과 나를 똑똑하게 구별해 선별적으로 공격해야 한다. 깨시민으로서 우리가 똑똑한 조절 T세포의 역할을 하자”고 제안했다. 자신을 비롯한 친여 진영은 정상 세포, 결혼식 논란 등을 퍼뜨린 언론과 이른바 ‘내란 세력’은 암세포에 빗댄 셈이다.

그러나 양자적 관점에서 본다면 자신의 눈에는 건강한 세포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암세포일 수도 있다. 자신의 인식이 절대적이라고 믿는 순간 세계는 더 이상 다층적이지 않고, 우리는 해답이 정해진 낡은 세계에 갇히고 만다. 양자역학은 인간 인식의 한계를 인정하는 학문이다. 나와 다름이 이 세계에 공존할 수 있다는 겸손한 태도가 출발점이다. 어쩌면 병들어 가는 우리 정치의 면역 체계를 살릴 치료법도 여기서부터 찾아야 하지 않을까. 딸 결혼식 날짜까지 잊을 정도의 학문적 열정을 불태운 김에 조금 더 깊이 공부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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