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은아]韓 수출 사상 최대 실적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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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아 경제부 차장

조은아 경제부 차장
요즘 한국 수출이 연일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다. 한국 수출의 화려한 성적은 슈퍼사이클(초호황기)을 맞은 반도체가 이끌었다. 지난달 전체 수출액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26.4%였다. 한국 수출에서 반도체의 기여도가 4분의 1을 넘긴 것이다. 10년 전 같은 시기엔 지금의 절반도 안 되는 11.5%였음을 고려하면 성장세가 놀랍다.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 반도체의 활약이 다행스럽지만 수출 희소식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최대 수출 수치에 가려진 뿌리 제조기업들의 부진 때문이다. 전체 수출은 불어났지만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 철강 등 일부 품목의 수출은 1년 전에 비해 10∼20%씩 감소했다.

제조업 위기는 올 하반기 구조조정이 본격화된 석유화학이나 철강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달 수출이 1년 전에 비해 18.9%나 급감한 자동차 부품산업도 소리 없이 곪고 있다. 최근 만난 한 국내 자동차 부품 제조사 대표는 중국산 저가 공세에 주변 부품사들이 도산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점점 기업들이 국산 대신 저렴한 중국산 부품을 채워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겉으론 한국 브랜드를 달았지만 속은 중국산이 가득한 ‘깡통 메이드인 코리아’가 조용히 확산되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 부품사들은 저가 중국산 부품에 밀려 일감을 줄인다.

정부와 중소기업들이 중국산 저가 공세에 서둘러 대비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국내 중소기업 제품의 원가경쟁력을 높이는 노력을 부단히 기울였어야 했다. 대미 관세 공격을 받고 보니 그간 수출 시장을 다변화하지 못한 점도 뼈아프다. 최근 대미 수출 감소를 동남아시아와 유럽에서 잘 만회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얼마나 지속될지 의문이다. 산업 현장에선 기업들이 대미 수출의 구멍을 임시방편으로 서둘러 메워놨을 뿐이라고 말한다.

한국 경제의 근간인 제조기업들의 쇠락은 고용 가뭄을 예고한다. 산업단지에선 중국산에 밀려 수주를 받지 못한 기업들이 문을 닫고 근무 일수를 줄이고 있다. 인공지능(AI)으로 인해 ‘고용 없는 성장’이 미국부터 가시화되고 있어 그나마 고용을 창출하던 제조업의 위기가 더욱 걱정이다.

제조업이 쓰러지면 지방 경제도 무너지기 쉽다. 제조업 생산기지가 뿌리내린 지방에선 중소기업들이 자금난에 처해 연체율이 급증하고 있다. 올 3분기(7∼9월) 5대 지방은행의 연체율은 4대 시중은행의 2배가 넘었다. 신규 투자는커녕 대출 이자조차 못 갚고 있는 기업들이 많다는 의미다. 지방에 돈이 안 돌고 고용이 줄면 인구가 더 유출돼 경기가 악화하는 악순환이 심해질 것이다.

뿌리 제조기업들을 살리려면 저가 경쟁력을 넘어서는 기술력을 키워야 한다. 중소기업 기술 개발을 위해 정부의 연구개발 자금 지원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가 미국과 중국의 보호정책 탓에 우리 기업들이 불리해진 부분을 점검하고 개선할 필요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이 반도체 외엔 내세울 것 없는 중국산 부품의 조립기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절실한 때다. 제조 생태계가 무너지면 반도체의 미래마저 담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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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아 경제부 차장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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