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밤에 일어나는 일… 밤을 사는 이들의 연대[2030세상/박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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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용 칼럼니스트

박찬용 칼럼니스트
내 새 책이 나왔다. 관련해 작은 전시를 열 기회가 생겼다. 전시품이 흩어져 있어 차로 몇 번 움직여야 했다. 짐을 옮기는 날, 용달이나 운전 등 방법을 고민한 끝에 밤까지 기다렸다. 서울은 밤에 차가 안 막히니까 차가 막힐 일과 시간에 일을 하고 밤에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늦은 저녁을 먹고 나자 저녁 9시쯤. 평일 밤이라 50% 넘게 할인하는 차량공유 서비스 렌터카의 시동 버튼을 눌렀다. 익숙한 거리를 달리자 나의 지난 밤들이 기억났다.

나는 아침잠이 많은 대신 밤에 덜 존다. 수험생 기간이나 군대에 있을 때 조금 고생스러웠다. 반대로 잡지사 에디터는 내 생활 패턴과 잘 맞는 면이 있었다. 야근이 많았으니까. 내가 일하던 잡지사는 한 달에 3분의 1쯤 야근을 했다. 그 당시 강남권에 생긴 ‘야식 주문 배달대행 서비스’가 나중에 ‘배달의민족’이 됐다. 야근하는 동안 시대의 거물이 태어난 걸 목격한 셈이다.

세상에는 여러 이유로 밤에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던 학생 시절, 키가 180cm는 될 법한 사람이 지나치게 짧은 치마를 입고 카운터로 다가왔다. 말 없이 카드만 내밀기에 봤더니 여성복을 입은 남성이었다. 이런 일을 포함해 깨어 있는 밤 시간의 세상이 많은 걸 알려줬다. 직장 생활을 할 때도 밤 근무에 큰 거부감이 없었다. 일을 좋아했으니 야근은 조금 지칠 뿐 싫지 않았다. 텅 빈 도로나 슈퍼마켓 등 밤만의 분위기가 있다. 그 분위기는 지금도 좋아한다.

밤에 일하는 사람들은 밤에 일하면 몸이 상한다는 사실을 모두 안다. 어느 정도인지 모를 뿐이고, 오늘 당장은 일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밤에 일하는 사람들만의 작고 미약한 연대 혹은 연대감이 있다. 아니, ‘밤에 일한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 사이에 솟아나는 동병상련적 동지애가 있다. 요즘 도시 생활에서 무척 보기 어려운 덕목이다.

올여름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24시간 해장국집에서 밥을 먹은 적이 있다. 자정 넘은 식당. 위 건강에 안 좋을 게 확실하나 당장은 너무 절실한 붉은 국물을 마시는데 야간근무 환경미화원 두 분이 들어왔다. 이분들은 조용히 자판기로 가서 무료 커피 두 잔을 뽑고 다시 나갔다. 식당 주인과 합의가 완벽히 된 듯 아무 일도 없는 가운데, 나 혼자 감탄했다. 이거다. 이게 밤에 일하는 사람들끼리의 연대다.

요즘 새벽배송 관련 야간 노동이 이슈인 듯하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히 안다. 도시의 밤이 잠들수록 낮이 비싸진다. 우리가 간편하게 누리는 일상은 모두 밤늦게까지 일하거나 밤부터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노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출근시간에 빵이 구워지려면 누군가는 새벽에 반죽을 치대야 한다. 연근해 어업 종사자들은 보통 새벽 4시쯤 출항한다.

사람이 잠들어도 맥박은 뛴다. 마찬가지로 도시가 잠들어도 도시의 맥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기질적으로, 체질적으로 그런 사람들에게 끌린다. 그런 분들의 이야기를 잘 전하고 싶다. 각자의 이유와 각오로 밤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을 언제나 응원한다. 지금까지 적은 이 원고도 밤에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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