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욕망 지운 주택정책 ‘프루이트 아이고’의 경고[기고/이승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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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승준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프루이트 아이고’는 195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인구 급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설된 대규모 아파트다. 설계는 유명 건축가 미노루 야마사키가 맡았다. 당초 빈민가의 범죄를 예방하고 도시 재생의 상징이 될 것으로 기대됐지만 주민의 의견과 생활 방식을 외면한 채 지어진 고층 임대단지는 곧 공실이 늘며 마약과 범죄의 온상이 됐다. 결국 완공된 지 2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철거됐다. 이후 프루이트 아이고는 범죄예방(CPTED) 설계와 소셜믹스의 실패 사례로, ‘인간을 배제한 도시계획의 비극’으로 기록됐다.

최근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보면 프루이트 아이고 사례가 떠오른다. 9·7 대책 이후에도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는 물론이고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까지 신고가 행진을 이어갔고, 급기야 정부는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해 대출 규제를 한층 강화한 10·15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여전히 냉소적이다.

이번 대책들은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짚지 못했다. 한국은행조차 부동산 시장 과열을 이유로 금리 인하에 나서지 못하는데, 정부와 서울시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있다. 물론 시장에는 투기적 과열 수요가 존재한다. 부동산 카르텔을 활용한 신축 단지의 비정상 거래, 폭등 유튜버들의 집값 띄우기 등이 그렇다. 이런 행위는 불안 조장으로 간주해 제재하고, 나아가 ‘부동산 가격 왜곡죄’ 같은 처벌 규정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정책 당국이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있다. 바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다. 안전하고 편리한 환경, 보육이 용이하고 학군이 좋은 집을 원하는 것은 시민의 기본적인 욕구다.

정부는 서울 집값을 안정시키겠다고 하면서 통화량을 늘려 유동성을 확대한다. 두 정책은 애초에 양립하기 어렵다. 서울의 집값 안정을 위해서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아파트는 더 이상 단순한 경제재가 아니다. 사람들이 실제로 살고 싶어 하는 지역에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공급 폭탄’이 필요하다. 이를 실행할 구체적 로드맵이 제시돼야 한다.

노태우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대규모 아파트 공급은 실제로 강남의 집값을 안정시켰다. 반면 9·7 대책에서 제시한 공급 물량으로는 서울의 집값을 잡기 어렵다. 선호 지역에 대한 강력한 공급 없이는 불안 심리를 잠재울 수 없다. 서리풀지구처럼 입지가 좋은 지역은 용적률을 상향해 공급 물량을 현 2만 채에서 4만 채 수준까지 늘리고, 중산층이 분양받을 수 있는 주택도 함께 공급해야 한다. 공공기관 이전 후 남은 부지나 다른 가용 부지에도 이런 방식의 과감한 공급 확대가 필요하다.

집값 폭등으로 자산소득이 근로소득을 추월하면 건전한 근로 의욕은 약화되고, 젊은 세대는 자산 형성의 사다리를 잃는다. 지금의 주택 구매 양상은 지역 간 격차를 넘어 세대 내에서도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아울러 서울의 주택 공급은 당분간 늘려야 하겠지만 단기 공급 대책만으로는 수도권 집중 현상을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 이제는 국토 발전의 체질 개선을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 국가 균형발전의 상징인 세종시를 명실상부한 행정수도로 완성하고, 균형발전의 명확한 신호를 미래 세대에게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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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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