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홍의 스포트라이트]한화 김경문 감독 ‘믿음의 야구’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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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린 2025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LG와 한화의 4차전에서 한화 김경문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대전=뉴시스

지난달 30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린 2025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LG와 한화의 4차전에서 한화 김경문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대전=뉴시스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프로야구에서 이토록 ‘결과론’이 논란이 된 적이 있었을까.

2025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LG가 한화를 시리즈 전적 4-1로 꺾고 우승했다. LG 우승도 화제였지만 한화 경기를 둘러싸고도 두고두고 논란이 일었다. 그 경기는 한화가 시리즈 전적 1-2로 지고 있을 때 치러진 4차전이었다. 한화 김경문 감독은 이전부터 계속 흔들리던 김서현을 마무리 투수로 또 기용했다가 그가 난조를 보이면서 역전패 빌미를 제공했다. 한화는 9회 4-1로 앞서다가 6점을 내주며 7-4로 졌다. 김 감독은 김서현이 볼넷과 투런 홈런을 내주며 극도의 불안함을 보였는데도 투수 교체 시기를 늦췄다. 한화는 다 잡았던 시리즈 추격 기회를 놓쳤고 26년 만의 우승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김 감독은 부진했던 김서현을 계속 기용한 데 대해 김서현을 계속 믿는 것은 선수 성장과 팀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감독은 이전에도 같은 지적에 대해 ‘결과론’이라고 응수했다. 결과보다는 의도가 중요하다는 것으로 비쳤다. 이는 ‘믿음의 야구’를 지향하는 그의 신념을 반영한다. 결과를 폄하하는 듯한 그의 발언은 거센 ‘결과론’ 논란을 낳았다. 그의 신념은 주관적으로는 옳을 수도 있겠지만 객관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어떤 행동을 평가할 때 그의 주관적 신념이나 의도를 가지고 판단할 것인가 혹은 그 행동이 가져온 결과를 가지고 평가할 것인가를 고심한다. 그러나 주관적 의도만으로는 객관적 평가를 할 수 없다. 한 사안을 바라볼 때도 모든 이의 주관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주관만이 옳다고 하면 주관을 가지고 행해진 이 세상의 모든 범죄도 합리화된다. 따라서 어떤 행동이나 선택의 평가는 그 결과가 가져오는 좋고 나쁨과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올바르고 현명한 행동은 주어진 정보와 환경 속에서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선택을 하는 것이다. 이는 영국의 유명한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이 그의 글 ‘윤리학의 요소들(The Elements of Ethics)’에서 펼친 논지이자 ‘객관적으로 옳은 행동’에 대해 규정한 것이다. 의도나 신념도 중요하지만 결과도 폄하돼서는 안 된다. 결과를 도외시하면 주관성의 오류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여기서 최선의 결과를 향한 확률을 높이는 노력이 중요하다. 그래서 충분한 데이터를 가지고 숙고해야 한다고 러셀은 주장했다. 야구에 적용하면 다양한 기록과 통계를 충분히 활용하는 것이다. 야구에서 정밀한 기록 분석이 발달한 건 우연이 아니다. ‘믿음의 야구’는 이에 반한다. ‘믿음’에는 ‘기다림’이 들어 있다. 문제가 드러나거나 기록이 좋지 않아도 기다리는 걸 전제로 한다. 이 ‘기다림’은 선수 교체 타이밍을 놓치거나 작전 변경을 늦추는 경직성으로 작용한다. 이는 현안이 중요할수록 더 심각한 모순이 된다. “당장 내일 재앙이 닥쳐오는데 즉시 필요한 대책은 놔두고 내년 계획을 세우는 것”과 같다.

선수에 대한 ‘믿음’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이를 적용하되 장단기 운영과 타이밍을 조율하라는 것이다. 좋은 선수를 육성하자는 의견에 반대할 이가 있는가. 하지만 그 육성도 결국 우승을 목표로 하는 것 아닌가. 김 감독은 이들의 앞뒤를 바꾸었다. 선수 교체는 필요에 의한 것이지 선수를 근본적으로 못 믿어서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이를 선수에게 납득시키고 운영 탄력성을 확보하는 것이 명장 조건이다. 팀 소통이 강조되는 이유다. 서로의 믿음은 이때 더 필요하다. 또 가을야구 동안 부진에 시달리던 선수를 가장 부담스럽고 결과도 잔혹할 시험대에 올리고 최악의 상황에 몰릴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그 선수를 위한 것인가. 그 선수가 이겨내고 성장할 수도 있었겠지만, 심리적 육체적 회복 기간이 부족한 단기전 특성상 그 선수가 실패할 확률이 더 컸기에 김 감독의 선택은 합리적이지 않고 모험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계속 등판시키고 교체 시기까지 늦춘 건 믿음의 야구를 증명하기 위한 고집은 아니었을까. ‘믿음의 야구’는 경직성을 보완하지 않으면 언제든 ‘미래 계획에 따른 것’이라며 실패에 대한 변명으로 둔갑할 수 있다. 주관적 믿음을 떠나 그 신념이 객관적인지 점검해야 한다. 우승 없는 김 감독이 자꾸 한국시리즈에서 실패하는 건 ‘믿음의 야구’ 신념 자체에 깃든 모순 때문일 수 있다.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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