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와 창조[내가 만난 명문장/박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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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정열을 파괴할 수는 있지만, 창조할 수는 없습니다.”

―피터 셰퍼의 ‘에쿠우스’ 중

박병성 공연칼럼니스트

박병성 공연칼럼니스트
피터 셰퍼를 일약 세계적인 극작가 반열에 올려놨던 ‘에쿠우스’는 말의 눈을 찌른 소년의 실화에서 출발한다. 셰퍼는 친구에게 우연히 전해 들은 사건에 알 수 없는 매력을 느꼈고, 2년 반을 공들여 에쿠우스를 완성했다. 작품은 소년 앨런이 말의 눈을 찌른 이유를 추적해 가는 심리 미스터리 구조를 띤다. 그러나 이 작품의 주인공은 앨런이 아닌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다. 앨런은 모두가 잠든 밤, 제의와 같은 경건한 절차를 거쳐 알몸으로 말을 탔다. 그것은 종교적이고 신화적인 행위였으며 그에게 원초적 희열을 안겼다. 앨런의 의식은 현대 문명이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밖의 것이다. 그러나 다이사트는 이른바 ‘정상’이라는 범주로 앨런을 데려오는 일을 주저한다. 그는 앨런의 디오니소스적 열정을 거세해 아폴론의 시민으로 만드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의심한다. 위 대사는 그러한 다이사트의 고민을 드러낸다.

인류는 이성의 빛을 통해 카오스적인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언어는 인류를 이성의 세계로 안내한 가장 중요한 무기였다. 그러나 후기구조주의 철학에 따르면 언어는 기표들의 끝없는 놀이일 뿐 본질에 영원히 닿지 못하게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세계와의 완전한 충일감, 원초적인 열정을 잃게 된다.

다이사트의 고백은 눈부신 문명을 세우고 우리가 잃은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셰퍼가 미스터리한 사건에 매료되고, 에쿠우스 초연 이후 전 세계가 맹신도적 열광을 보낸 것이 인류의 무의식에 남아 있는 원초적 열망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은 아니었을까. 사회에서 격리된 채 원초적 열망을 경험한 앨런과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누리지만 본능적 쾌락을 상실한 다이사트. 둘 중 어떤 삶을 선택하겠는가.

박병성 공연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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