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편법' 中 게임사 규제에 쩔쩔매는 문체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제도인지 모르겠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23일 시행한 해외 게임사의 ‘국내 대리인 지정제’를 두고 국내 한 게임사 관계자가 이같이 푸념했다. 해외 게임사의 불투명한 운영과 환불 피해를 막겠다며 정부가 제도를 도입했지만 정작 업계에서는 “중국의 반발을 고려해 시늉만 한 꼴”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 제도의 핵심은 해외 게임사 중 매출 1조원 이상이거나 하루 평균 설치 1000건 이상인 사업자는 반드시 국내에 대리인을 두도록 한 것이다. 대리인은 본사를 대신해 이용자 민원 처리,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 정부 보고 의무 등을 수행한다. 위반 시 과태료 2000만원을 부과한다.

겉으로는 “국내 게임사와 동일 규제를 하겠다”는 취지지만 실상은 현장 목소리와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매출 1조원 기준을 충족하는 해외 게임사는 세계적으로 30곳 안팎에 불과하다. 이런 기준이라면 실제 피해를 일으키는 중국계 중견·중소 퍼블리셔(게임 유통업체)는 대부분 제외된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정작 피해를 유발하는 건 매출 100억~1000억원대 중국 게임사”라며 “규제의 칼날이 너무 무디다”고 지적했다.

문체부의 입법예고 원안은 정도가 더 심각했다. ‘직전 3개월간 국내 이용자 평균이 10만 명 이상’이라고 허들을 낮췄다. 업계에서 반발이 나오자 ‘일평균 설치 1000건’으로 수정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정책 효과를 거두기엔 솜방망이에 가깝다는 게 업계 지적이다.

통계도 우려를 뒷받침한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 의무를 위반한 국내외 게임사는 총 388곳, 해외 게임사는 204곳이었다. 이 중 142곳(70%)이 중국 기업이었다. 23일 여야 의원 모두 국정감사장에서 같은 문제를 지적했지만 문체부의 답변은 쇠귀에 경 읽기 수준이었다. “설정 기준을 무작정 높이면 관리도 되지 않고, 실효성도 없어 무작정 대상을 넓힐 수는 없다”고 해명했다. 쉽게 말해 감시 대상이 너무 많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사이 일부 해외 기업은 국내 지사를 두고도 사실상 ‘유령 법인’ 형태로 운영하는 편법을 꾀하고 있다. 법인은 존재하지만 소비자 보호 기능은 사실상 멈춰 있는 셈이다. 직원이 없어 환불 등 민원이 발생해도 “게임 내 고객센터로 문의하라”는 답변만 돌아오는 실정이다. 이번 정부 초대 문체부 장관은 플랫폼 비즈니스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기업인 출신이다. ‘K게임’을 미래 성장산업으로 키우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공언이 공염불이 되지 않으려면 게임산업에 대한 불신을 제거하기 위한 이번 제도부터 제대로 시행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