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金)만큼 인간과 친밀하고 오랜 기간 욕망과 경배의 대상이 된 금속은 없을 것이다. 금이 인류사에 처음 등장하는 건 기원전 6000년께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수메르문명에서다. 최소한 8000년 전부터 금을 이용한 장식품이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또 다른 사례는 기원전 5000년부터 기원전 3000년 사이, 현재 불가리아 지역에 존재한 트라키아의 ‘황금 문명’이다. 고대 무덤에서 금제품이 쏟아져 나왔고 2004년에는 왕의 황금 가면이 출토됐다. 이집트도 빼놓을 수 없다. 기원전 1300년께 만들어진 투탕카멘왕의 황금 마스크는 얼굴만이 아니라 가슴까지 덮는 두건 형태를 하고 있다. 그의 관에 사용된 금도 110㎏에 달한다고 한다.
‘황금의 왕국’이라고 하면 신라도 뒤지지 않는다. 전 세계에 현존하는 고대 순금 금관이 13개 정도인데 그중 6개가 신라의 것이다. 신라인들의 이런 ‘금 사랑’은 멀리 아랍의 기록에도 등장한다.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지리학자이자 여행가인 알 마크디시는 966년 쓴 <창세와 역사서>에서 “신라인은 금실로 수놓은 천으로 집을 장식하고 금 그릇을 사용한다”고 했다. <삼국유사>는 서까래나 문틀 주위를 금으로 장식한 경주의 초호화주택 ‘금입택(金入宅)’ 39채를 소개할 정도다. 그만큼 신라의 금 생산량이 많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신라금관 6개를 처음으로 한곳에서 볼 수 있게 됐다.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덕분이다. 먼저 각국 정상에게 찬란했던 ‘천년왕국 신라’의 문화를 보여주고 APEC 이후 한 달여간 일반에도 공개된다. 맨 처음 발굴된 금관총 금관이 1921년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으니 무려 104년 만에 신라 금관이 한자리에 모이는 셈이다.
해방 후 우리 손으로 처음 발굴한 천마총 금관, 일본인 박물관장이 평양 기생 차릉파에게 씌우고 사진을 찍어 분노를 샀던 서봉총 금관, 도굴품이라는 이유로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지 못한 교동 금관 등 저마다 품고 있는 사연에도 관심이 간다. 국익이 걸린 후손들의 큰 행사에 일조하게 된 금관의 주인들도 미소 짓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김정태 논설위원 inu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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