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의 민낯[이준식의 한시 한 수]〈333〉

5 days ago 6

손바닥을 뒤집으면 구름, 다시 뒤엎으면 비가 되거늘

어지럽고 경박한 걸 굳이 다 셀 필요 있겠는가.

그대 보지 못했는가. 관중과 포숙아의 가난한 시절의 사귐을.

이 도리를 요즘 사람들은 흙처럼 내버린다네.

(翻手爲雲覆手雨, 紛紛輕薄何須數. 君不見管鮑貧時交. 此道今人棄如土.)

―‘가난할 때의 사귐(빈교행·貧交行)’ 두보(杜甫·712∼770)

구름도, 비도 손바닥 뒤집듯 바뀐다. 세상의 인심도 그만큼 경박스럽다. 계산기 두드리듯 셈하는 인간관계, 굳이 다 헤아릴 필요가 있을까. 득세한 세력에게는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가 몰락한 순간에는 비 뿌리듯 산지사방으로 흩어진다. 세속의 민낯을 경험한 시인이 떠올린 건 춘추시대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교유. 가난할 때도, 부귀해져서도 변치 않은 우정. 실패와 성공을 함께한 돈독한 사귐이다. 하지만 이는 과거의 미덕일 뿐 지금은 변덕이 죽 끓듯 한다. ‘어지럽고 경박한’ 사례가 다반사로 벌어지니, 의리나 신뢰 따위가 흙만큼 하찮을 뿐이다. 시는 안사의 난 직전 두보가 장안에 머물던 때 지은 작품이다. 과거시험에 연이어 낙방하고 권세가를 향한 구직의 시작(詩作)은 줄줄이 묵살되는 등 좌절의 나날이었다. 유가의 가르침대로 관직에 나가 세상을 구제하고자 했던 그였지만 기회는 오지 않았다. 시는 숱한 좌절에 대한 절망이 농축된 듯하다. 이 와중에도 시인이 던지는 묵직한 울림은 분명하다. 우정은 세월을 견디며 이해득실을 넘어서는 데서 비롯된다. 그것이 두보가 절망 속에서도 끝내 붙잡았던 가치였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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