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번이 확인되는 ‘비밀은 없다’는 진실
문자·통화, 몇 년 뒤 공개된다 전제해야
반면교사 못 삼은 尹 검찰, 또 논란 現 검찰
내 정치선택이 내일 신문 1면에 나온다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채 상병 사건 당시 격노를 전 안보실 1차장 등이 인정했고, 대통령의 당 공천 개입을 친윤 핵심 의원이 확인했다. 그토록 감추려 했건만 맥없이 드러나고 있다. 충성파라던 전 경호처 차장도 태도를 바꿔 대통령의 비화폰 기록 삭제 지시를 시인했다. 전 특전사령관은 “총으로 쏴 죽이겠다고 그러시지 않았느냐”고 발언해 윤 전 대통령을 당황케 했다.
김건희 여사도 예외는 아니다. 믿었던 건진법사나 건설사 오너 등이 명품 제공 사실을 털어놓았다. 명태균 씨 폭로도 빠질 수 없다. 돌이켜 보면 김 여사는 느슨한 ‘거래적 의리’에 의탁해 겁 없이 비밀을 공유했던 것이다. 용산에 머무는 동안 누구도 어쩌지 못할 것이란 믿음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동영상 속 김 여사는 비밀 유지가 불가능한 인간사를 정확히 아는 듯했다. “비밀은 없어요. 잠깐은 속일 수 있어도, 결국 비밀은 다 나와요.” 전 국민의힘 대표의 배우자가 보냈다는 프랑스 명품백도 그렇다. 3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 이런 방식으로 드러날 걸 상상이나 했을까. 비밀은 발이 달린 듯 사방에서 걸어 나왔다.
이처럼 3대 특검 수사는 비밀의 비밀이 깨지는 과정이다. 수사와 브리핑, 영장과 공소장, 재판 중계를 통해 특검은 한국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임진왜란 후 나온 징비록이 한 역할대로다. 과거의 어떤 잘못을 징(懲)하고, 후대에 무엇을 전달해 비(毖)하도록 할지가 차곡차곡 기록되고 있다.2025년판 징비록의 실천적 교훈이 있다면 그중 하나는 자기 위험은 본인이 알아서 챙겨야 한다는 점이다. 누구도 내 비밀을 지켜준다고 장담할 수 없다. 문자건 전화 통화건 캡처되고 녹음될 것이고, 부적절한 일이 있었다면 몇 년 뒤라도 망신을 살 각오를 해야 한다. 올바라야 한다는 윤리를 따지기 이전에, 나의 안녕을 위해 삼갈 수밖에 없다. 300쪽이 넘는 한 정치인의 1심 판결문을 읽어본 적이 있다. 수사기관이 달려들면 포렌식 수사가 얼마나 정교하게 내 삶을 재구성할지에 생각이 미치면 정신이 번쩍 들 수밖에 없다.
이런 교훈이 새로울 것도 없다. 과거에도 녹음 파일은 공개됐고, 불법 행위를 담은 업무 수첩도 여럿 압수되곤 했다. 문제는 우리가 과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는 점이다. 개개인은 물론 검찰 같은 권력기관은 자신들의 과거에서 반면교사를 더 못 찾은 듯하다. 그 결과 김건희 봐주기를 거쳐 검찰청 폐쇄라는 운명을 맞았고, 전 검찰총장이 수사받고 있다.
놀라운 일은 이재명 정부의 검찰도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로 새로운 파문을 낳고 있다는 점이다. 이틀 사이에 중앙지검장은 사표를 냈고, 검찰총장 대행은 “검찰이 주도하여 한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이 사안은 당사자들의 부인과는 별개로 대통령실, 법무부가 의사 결정 과정을 잘 알았다고 보는 것이 상식에 부합한다. 과연 비밀이 없는 지금 세상에서 서울중앙지검장은 진실을 끝까지 안고 갈 수 있을까. 항소 포기 결정은 경주 정상외교가 끝나자마자 민주당이 재판중지법 입법을 추진하려던 것을 용산이 나서서 제동을 건 때와 비슷한 시기에 진행됐다. 우연인지, 누군가 조율한 것인지 의문이 따를 수밖에 없다. 검찰 업무를 총괄 보좌하는 대통령민정수석은 수년 전 검찰 간부회의 때 ‘뉴스페이퍼 스탠더드’라는 말을 남긴 적이 있다. “(수사라는 칼을 휘두르는 검찰은) 어떤 행동을 할지 고민될 때 내가 하는 행동이 내일 아침 조간신문 1면에 났을 때 납득될 수 있는지 살피라”는 취지였다. 권력기관 구성원의 처신에 이만한 기준이 있을까. 윤 전 대통령 부부, 계엄에 가담한 군 장성들, 봐주기 수사를 한 과거 검찰은 물론 지금의 검찰과 법무부, 용산은 이 기준에 자신을 비춰 보길 바란다.비밀이 없는 세상에 우리 앞엔 두 가지 선택이 놓이게 된다. 오늘의 내 행보가 어떻게든 공개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마음에 둘 것인지, 아니면 그렇기 때문에 더 입 무거운 충성파와 ‘우리 사람끼리’를 강화할 것인지. 양자택일할 일이 아니니 둘 사이 어딘가겠지만, 어느 쪽에 더 가까울 때 공공선과 나의 안위가 더 보장될지는 자기만의 답을 제각각 갖고 있을 것이다.
김승련 논설실장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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