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유종]‘제2 희토류’ 될 의약품 원료… 위기발생 전 자급 서둘러야

1 week ago 6

이유종 정책사회부 차장

이유종 정책사회부 차장
올해 1∼4월 아일랜드는 미국에 710억 달러(약 101조 원)어치 물품을 수출하며 미국의 무역적자 상대국 2위에 올랐다. 수출액 과반인 360억 달러(약 52조 원)는 비만과 당뇨 치료제 제조에 필요한 호르몬 1만600kg이었다. 미국 주요 제약사들은 호르몬을 원료로 비만 치료제 위고비 등을 생산한다. 아일랜드 경제는 올해 1∼3월 비만 치료제 원료가 대미 수출 증가를 주도하며 지난해 같은 분기 대비 9.7% 성장했다.

원료의약품은 합성, 발효, 추출 등으로 만들어진 물질로, 완제의약품 제조에 사용되는 의약품 원료다. 약국에서 판매하는 해열진통제는 완제의약품이고 해열진통제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아세트아미노펜, 이부프로펜 등은 원료의약품이다.

하지만 국내 원료의약품 자급력은 좋지 않다. 2022년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11.9%로 최저치를 기록했고 2023년에도 25.6%에 그쳤다. 해외 의존도가 높은 이유는 제약사들이 원가 절감 차원에서 수입 원료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해외에 생산을 의존하다가 2021년과 2023년 품귀 현상이 발생한 차량용 요소수와 상황이 비슷하다.

팬데믹, 수출 통제 등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발생하면 필수의약품 공급마저도 중단될 수 있다. 2016년 1월부터 2025년 8월까지 최근 10년간 원료의약품 수급을 이유로 공급이 중단된 의약품 품목은 108개였다. 2023년에는 해열제, 소염제, 천식치료제, 항생제 등 필수의약품이 한때 품절돼 환자들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게다가 원료의약품 수입은 지난해 기준 중국(36.3%)과 인도(14.2%)에 편중돼 있다. 희토류처럼 원료의약품도 언제든 전략 무기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해외 과다 의존 원료의약품, 필수의약품 원료 등 구체적인 품목을 선정해 자급화를 추진해야 한다. 정부는 15일 국정감사에서 내년 원료의약품 자급화 예산으로 약 157억 원을 편성했다고 밝혔다. 고무적인 일이다. 다만 올해 3월부터 시행 중인 국가필수의약품에 국산 원료를 사용할 때 약가를 우대하는 정책은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시행 7개월이 지났지만 국산 원료를 사용했다고 신청한 제약사는 단 한 곳도 없다. 현장 상황을 잘 살펴야 한다.

국내 원료의약품 업체들은 대부분 소규모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글로벌 제약사와의 공급 계약 체결도 어렵다. 정부 지원책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 한 원료의약품 업체 대표는 “수년간 수십억 원을 투자해 미국 식품의약국의 승인 실적을 냈지만 정부 지원은 거의 없었다. 정부의 지원 정책이 뒷받침된다면 자급률 향상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전했다.

공급망 대비를 넘어 고부가가치 원료의약품 개발에도 나서야 한다. 아일랜드처럼 호르몬 등 상당한 기술력이 필요한 원료의약품은 경제 성장에 효자 역할을 하고 있다. 고효능 원료의약품의 경우 적은 양으로도 강력한 치료 효과를 낼 수 있어 효율성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 암, 당뇨병 치료제 등을 위한 맞춤형 원료의약품 수요도 늘고 있다. 미국은 국산품 우대 정책(Buy American)을 펴며 자국산 원료의약품 사용을 유도하고 유럽연합(EU)은 연구개발 펀드와 투자보조금으로 생산 기반을 확대하고 있다. 경쟁자들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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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종 정책사회부 차장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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