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재명]신산업 키우기보다 힘든 죽은 산업 살리기

1 week ago 9

박재명 산업1부 차장

박재명 산업1부 차장
미국이 희토류 산업 재건에 나선 것은 2010년 중국과 일본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이후였다. 중국이 자동차, 스마트폰, 첨단무기 생산에 필수적인 희토류 수출을 중단하자 일본은 사흘 만에 백기를 들었다. 21세기 산업 생산에서 희토류의 중요성을 깨달은 미국은 10년 넘게 희토류 채굴과 정제에 자금을 투입했다.

하지만 지금도 희토류 시장의 중국 의존도는 절대적이다.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채굴의 69%, 정제의 91%를 차지하고 있다. 다른 나라가 희토류 생산에 나서면 중국은 저가 공세로 점유율을 지킨다. 관련 기술력과 인력 수준도 세계적이다.

미국은 1990년대까지 세계 최대 희토류 생산국이었다. 하지만 환경오염 논란과 수익성 악화로 희토류를 사양 산업으로 판단했다. 1995년에는 핵심 정제 기술을 가진 희토류 기업을 중국에 매각하기도 했다. 그 결정은 30년 뒤, 미국산 최첨단 전투기조차 중국산 희토류 없이 만들 수 없는 상황을 초래했다.

최근 선진국을 중심으로 쇠퇴 산업을 되살리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아웃소싱으로 대표되던 세계화 시대가 저물고, 각국이 산업 보호에 나서며 생긴 현상이다. 다만 성공 사례가 거의 없다.

일본의 반도체 산업이 대표적이다. 1980년대 세계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던 일본 반도체는 지금 한국과 대만에 끼어 존재감이 줄었다. 일본 정부는 2020년대 들어 반도체 산업 부흥에 나섰다. 기업연합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회사 라피더스를 세우고, 정부 지원금 9200억 엔을 투입했다. 추가 지원금과 출자금을 더하면 총 1조8225억 엔(약 17조1000억 원)이 이 공장에 투입된다. 그래도 미래가 긍정적이지만은 않아 보인다. 이미 일본 내에 반도체 인력과 공급망, 생태계가 상당 부분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은 한국 산업들도 마찬가지다. 산업계에선 “반도체 외에 안심할 업종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 나온다. 철강, 석유화학, 조선 등 한때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던 산업은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고, 배터리 같은 신산업은 격화된 글로벌 경쟁에 흔들리는 중이다.

한국은 여러 산업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제조업 강국이다. 이는 다른 나라들이 부러워하는 강점이지만, 우리 스스로는 그 지위를 유지하는 데 큰 의지가 없어 보인다. 위기에 빠진 한국 철강을 지원하는 ‘K스틸법’은 여야 갈등 속에 국회에 계류돼 있다. 이달 초 기자들이 해당 법안의 10월 국회 통과 여부를 묻자 “10월엔 국정감사 일정이 있어 11월이 되어야 가능할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산업계와 여의도의 위기 온도 차가 그만큼 크다. 망가진 산업을 살리려면 신산업을 키우는 것보다 많은 비용이 든다. 돈을 쏟아부어도 대부분 되살리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26일 중국과의 회담 뒤 “중국이 대미 희토류 수출 통제를 1년 연기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중국이 9일 희토류 수출 통제를 무기화하자 협상에 나선 결과로, 현재까지는 중국의 ‘판정승’으로 보인다. 30년 전 사양 산업이 미국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결과다. 30년 뒤 어떤 쇠퇴 산업이 한국의 ‘희토류’가 되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미리 선별한 뒤 늦지 않게 지원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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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명 산업1부 차장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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