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의 ‘유심 해킹 사태’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소비자 집단소송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SK텔레콤을 상대로 소송에 참여한 인원은 18만 명을 넘어섰다. 소송 참여자만 확보하면 수익이 나는 구조 덕분에 집단소송은 중소 로펌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소 로펌 ‘블루오션’ 된 집단소송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을 상대로 한 집단소송은 무료 소송을 진행 중인 법무법인 대건이 약 14만600명으로 가장 많은 참여자를 확보했고 법률사무소 노바(2만200명), 로피드(1만333명), 대륜(1만76명)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로고스, 거북이, 로집사, 엘케이비(LKB) 등 중소형 로펌도 소송인단 모집에 적극 나서고 있다. 로펌업계는 전체 소송 참여자가 조만간 2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집단소송은 같은 사안의 다수 피해자가 공동으로 제기하는 손해배상 소송이다. 로펌은 착수금 없이 무료로 진행하거나 성공보수만 받는 방식으로 소비자의 참여 장벽을 낮추고 있다.
소송에서 패소하면 SK텔레콤이 부담해야 할 보상액은 수백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로피드는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집단소송을 제기하며 9175명을 대리해 1인당 50만원씩 46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서를 제출했다. 대건은 청구액을 1인당 10만~30만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소형 로펌이 이처럼 집단소송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대형 로펌이 독점해온 기업 자문과 송무 시장과 달리 집단소송은 짧은 시간에 사건 착수금만으로 수십억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새로운 먹거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륜은 집단소송 참여자 1만여 명으로부터 민사·형사 착수금을 각각 11만원, 33만원씩 받아 30억원대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중소형 로펌으로서는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인지도를 높일 기회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돈호 노바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유튜브에 출연해 SK텔레콤 유심 해킹 사태 관련 영상을 세 차례 올렸고, 이 중 소송 개시를 알린 영상은 72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를 통해 2만여 명의 소송 참여자를 끌어모은 셈이다.
◇곤혹스러운 기업들 ‘전전긍긍’
기업들은 이런 집단소송 시장 급성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집단소송이 제기되면 단기적으로 브랜드 이미지가 훼손되고, 장기적으로는 투자 유치와 신규 사업 추진에 차질을 빚을 수 있어서다. 한 정보기술(IT) 대기업 관계자는 “소비자 접점이 넓고 사업이 복잡할수록 리스크 관리가 어렵다”며 “집단소송에 대한 실질적인 대비책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법원에서 기업에 무죄 판결이 나오더라도 소송 제기 자체만으로 사업 전반에 미치는 ‘지속적 리스크’로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4년 KT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서 법무법인 평강은 2만4000여 명의 피해자를 모집해 120억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이 4년 만에 KT에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으나 그사이 KT는 부정적 여론에 시달렸다. 2022년 SK C&C 인터넷데이터센터(IDC) 화재로 발생한 카카오톡 ‘먹통 사태’에서도 일부 소비자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1심 법원은 “서비스 장애는 회사 과실이 아니다”며 카카오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카카오의 기업 평판은 타격을 입었다.
정희원/황동진 기자 to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