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인사이트]장애인 모델, 브랜드에 따뜻한 온도를 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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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는 최근 실사 영화를 제작하며 다양성을 앞세워 흑인 인어공주, 라틴계 백설공주 등 원작과 다른 인종의 배우를 주인공으로 파격 캐스팅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원작을 망가뜨렸다”, “정치적 목적이 전 세계 어른과 어린이들의 꿈과 동심을 망쳤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한때 당연시되던 다양성(Diversity), 형평성(Equity), 포용성(Inclusion) 등 이른바 DEI 정책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에는 브랜딩이나 인사관리에서 DEI를 반영해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이미지를 유지하려고 애쓴 기업들조차 하나둘 발을 빼는 분위기다. 202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는 의미의 ‘보디 포지티브(Body Positive)’ 운동이 확산하며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이 앞다퉈 체격이 큰 ‘플러스 사이즈’ 모델을 기용했다. 그러나 최근 위고비 등 체중 감량제가 유행하고,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이후 DEI 프로그램이 약화되면서 이들 모델의 일자리도 빠르게 줄고 있다.

장애인 모델 기용을 둘러싼 의견도 엇갈린다. 2020년 구찌가 다운증후군 모델을 내세웠던 캠페인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2022년 같은 시도를 한 빅토리아시크릿은 ‘장애를 홍보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다양성의 가치를 강조한 캠페인이 오히려 ‘착취적 브랜딩’이라는 역풍을 맞은 것이다.

이처럼 다양성을 둘러싼 각국 정부와 대중의 반응이 엇갈리자 기업들은 혼란에 빠졌다. 자칫 ‘해도 욕먹고, 안 해도 욕먹는’ 정책이 된 셈이다. 그렇다면 ‘다양한 몸’을 포용하는 정책은 과연 브랜딩에 실질적인 효과가 있을까?

국립싱가포르대 연구진은 장애인 모델의 마케팅 효과를 분석한 결과, 기업들이 최근 다양성 정책을 서둘러 폐지하는 것은 성급한 결정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애인 모델의 기용이 ‘브랜드의 따뜻함(Brand Warmth)’과 ‘브랜드의 멋짐(Brand Coolness)’을 동시에 높이는 효과적인 전략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연구진이 페이스북 광고를 활용해 A/B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의족을 착용한 모델이 등장한 광고의 클릭률(3.01%)은 일반 모델이 등장한 광고(2.04%)보다 높았고, 클릭당 비용은 28% 더 낮았다. 소비자들이 장애인 모델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못해 마케팅 효과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 역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장애인 모델의 마케팅 효과는 플러스 사이즈 모델보다 더 강력했다. 연구진은 198명의 참가자에게 한쪽 팔이 없는 모델과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 민소매 옷을 입은 사진을 보여주고, 이들에 대한 태도와 감정을 측정했다. 그 결과 참가자들은 장애인 모델에 대해 ‘브랜드의 따뜻함’과 ‘멋짐’을 동시에 느꼈으며, 자신과의 동일시에도 부정적 영향을 받지 않았다. 반면 플러스 사이즈 모델을 본 참가자들은 브랜드에 따뜻함이나 멋짐을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자기 동일시 수준이 낮아지는 역효과가 나타났다. 연구진은 그 이유에 대해 “장애는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특성으로 인식되는 반면 체형은 스스로 선택한 결과로 여겨지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플러스 사이즈 모델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후속 실험 결과 장애인 모델 기용의 긍정적 효과는 장애인 모델을 선도적으로 선보인 ‘퍼스트 무버(First Mover)’ 기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후발 주자는 단순히 업계에 형성된 유행을 따르는 수동적인 기업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또한 브랜드가 과거에 특정 신체를 비하해 논란에 휩싸이는 등 잘못을 저지른 전적이 있는 경우에도 마케팅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빅토리아시크릿의 장애인 모델 기용이 엇갈린 평가를 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한때 ‘이상적인 몸매’를 예찬하며 마른 몸과 큰 몸을 동시에 비하했다는 비판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장애인 모델 기용이 브랜드의 따뜻함과 쿨함을 동시에 높이는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임을 보여준다. 특히 장애인 모델 기용이 대세로 자리 잡기 전에 주도적으로 나서는 브랜드일수록 그 효과를 선점할 가능성이 크다. 전 세계 인구의 약 16%가 장애인이지만, 이들을 모델로 세운 캠페인은 0.02%에 불과하다. 브랜드 경쟁이 치열한 오늘날, 장애인 모델의 기용은 기업의 이미지를 차별화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427호(10월 2호) ‘따뜻하고 쿨하다, 장애인 모델의 부상’ 원고를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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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열 기자 ky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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