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500대 기업 CEO들의 평균 나이가 57세, 평균 재임 기간이 7년인 걸 감안하면 버핏의 뒤를 이어 시가총액 1조 달러에 달하는 ‘가치투자의 본산’을 누가 이끌지가 늘 관심사였다. 버핏의 후계자는 2021년 우연찮게 공개됐는데, 버핏이 한 인터뷰에서 “오늘 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내일 아침 경영권을 인수할 사람은 그레그가 될 것”이라며 그레그 에이블 비(非)보험 부문 부회장을 지목했다. 그러면서도 은퇴 계획은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그런데 버핏이 3일 그의 고향 오마하에서 열린 버크셔해서웨이 연례 주주총회에서 60년간 지켜온 CEO 자리에서 올해 말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후임자인 에이블을 포함해 회사 이사진도 몰랐던 깜짝 은퇴 발표였다. 해마다 5월 초 열리는 버크셔 주총에는 버핏의 투자 철학과 지혜를 듣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투자자들이 몰려드는데, 올해는 4만여 명이 운집해 전설적인 투자자의 갑작스러운 퇴장에 1분여간 기립 박수를 보내며 경의를 표했다.
▷올해가 그가 이끄는 마지막 주총임을 알고 있었던 버핏은 은퇴 발표에 앞서 5시간에 걸쳐 경제 현안에 대한 견해를 가감 없이 쏟아냈다. 특히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을 “큰 실수”라며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는 트럼프 이름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무역이 무기가 돼서는 안 된다”며 “무역이 전쟁 행위(act of war)가 될 수 있다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나라가 번영할수록 우리도 그들과 함께 더 번영할 것”이라며 “균형 잡힌 무역이 전 세계를 위해 이롭다”고 강조했다.▷트럼프발 관세 폭탄으로 금융시장이 대혼란에 빠진 와중에도 버핏은 올 들어 세계 억만장자들 가운데 가장 많은 자산을 늘렸다. 다들 ‘트럼프 랠리’에 취해 있을 때 애플 같은 대형 기술주 주식을 내다팔고 채권과 현금 자산 비중을 크게 늘린 덕분이다. 이번에도 그의 선택이 옳았던 셈이다. 버핏의 자산은 현재 230조 원을 넘어섰는데, 이 돈의 95%가 60세 이후에 형성됐다고 한다. “투자 원칙의 첫 번째는 돈을 잃지 말라, 둘째는 첫째 원칙을 절대로 잊지 말라”는 버핏의 투자 철학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하는 혼돈의 시대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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