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진정한 화합은 전임자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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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5.04 17:41 수정2025.05.04 17:41 지면A21

[한경에세이] 진정한 화합은 전임자 인정

화합은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자주 꺼내드는 단어다. 하지만 말과 실제 행동 사이에 큰 간극이 있다. 진정한 화합은 나와 뜻이 맞는 이들과 손을 잡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반대한 이들과도 함께 지역 발전이라는 공통 목표를 위해 나아가는 데서 시작된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과거를 지우지 않으려는 태도가 곧 화합의 본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단체장이 취임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전임자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다. 사업 명칭을 바꾸고 시정 슬로건을 새로 정하고 전임자의 정책은 폐기하거나 전면 수정한다. 행정은 정치와 달라야 한다. 정치는 교체되지만 행정은 연속성을 필요로 한다.

필자가 민선 6기 과천시장으로 재임한 시절, 급속한 고령화에 대응하고자 과천시립요양원 설립을 구상했다. 이후 낙선으로 사업은 중단될 뻔했지만 민선 8기 시장으로 돌아온 후 기공식을 열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과천시립요양원은 제가 구상했지만 여기까지 끌고 온 분은 전임 시장님입니다. 감사의 박수를 보내주십시오.”

그 말에 시민들이 보내준 따뜻한 박수는 정치가 아니라 행정을 바라보는 시민의 성숙함을 느끼게 했다. 민선 6기 시장 재임 시절에 과천과 양재를 연결하자는 제안으로 시작된 과천위례선 철도사업도 전임자의 공을 어느 행사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과천위례선 유치 제안은 제가 했지만, 과천정부청사역 연장을 이뤄낸 분은 전임 시장입니다.” 그 뒤 지인들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받았다. “왜 좋은 자리(성과)를 전임자에게 양보합니까.”

내 대답은 한결같다. “행정은 일관성이 생명입니다. 시민은 누가 했느냐보다 결과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소위 ‘오바마 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 개혁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공화당 정권 시절 논의된 일부 정책을 과감히 수용했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 역시 전임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마련한 노동개혁 법안을 폐기하지 않고 계승하며 안정적인 성장 기반을 다졌다.

과천시의 슬로건 ‘시민이 만드는 행복도시’ 역시 전임 시장이 만든 것이지만 바꾸지 않았다. 좋은 방향이라면 굳이 바꿀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슬로건 교체를 위한 시간과 인력, 예산을 아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는 뜻의 온고지신(溫故知新)과 선인의 뜻을 잇는다는 계사전승(繼事傳承)의 자세는 행정의 기본이다. 진정한 화합은 말이 아니라 실천에서 비롯된다. 전임자의 업적에 고개를 숙일 줄 아는 겸손 위에 지역의 미래가 놓여 있다. 그것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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