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일한 대가, 퇴직 후 온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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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일한 대가, 퇴직 후 온전하게

100세 시대에 평균 수명은 늘었지만 은퇴 이후 생활은 여전히 불안하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다.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지금 은퇴 후 소득 보장은 국가적 책무다. 국민이 평생 흘린 땀의 대가를 은퇴 후에도 온전히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퇴직급여는 단순한 일시적 소득이 아니다. 수십 년간 노동의 결실이자 후불임금이다. 그러나 현행 소득세법은 이를 과세 대상으로 두고 있다.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받으면 퇴직소득으로 분류돼 공제와 근속연수에 따른 안분 계산을 거쳐 일반 근로소득보다 낮은 세율이 적용되긴 하지만 실수령액이 줄어드는 건 여전하다. 연금으로 수령하면 분리과세가 적용돼 연금 외 수령 대비 상대적으로 세 부담이 낮지만 장기간 근로의 결실을 온전히 보전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퇴직급여는 국민의 노후 생활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서민·중산층에게는 사실상 마지막 사회적 안전판이다. 퇴직 이후에도 세금 때문에 실질 소득이 줄어든다면 국민의 조세 신뢰를 해치고 근로 의욕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 결국 퇴직소득 과세 문제는 단순한 세법의 문제가 아니라 장기 근로를 장려하고 사회적 보상을 실현하는 중요한 정책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해외 주요국은 이미 제도 개선에 나섰다. 미국은 퇴직연금 과세를 이연해 은퇴 후 생활자금 기능을 강화했다. 영국과 일본도 세 부담을 낮춰 노후 생활을 뒷받침한다. 우리만 여전히 국민의 땀값에 세금을 매기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발의할 소득세법 일부개정안은 퇴직일시금과 퇴직연금에 소득세를 전면 비과세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형평성을 위해 사용자와 특수관계에 있거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정 금액을 초과하는 고액 퇴직급여는 비과세 대상에서 제외했다. 국민 다수에게 합리적 이익을 보장하면서도 과도한 특혜나 탈세 가능성은 차단하는 장치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2026년부터 시행된다. 이는 단순한 세금 감면이 아니라 성실히 일한 국민에게 합당한 보상을 온전히 돌려주는 조치다. 더 나아가 장기간 근로를 장려하고 은퇴 후 소득보장 체계를 강화하는 제도적 기반이 될 것이다. 기업 역시 숙련 인력을 장기간 확보할 수 있어 노동시장 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다. 사회·경제 전반에 긍정적인 파급 효과가 예상된다.

국가가 모든 노후를 책임질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국민이 평생 일한 대가를 퇴직 후에도 온전히 누리게 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자 사회적 정의다. 국회가 이 법안을 책임 있게 통과시킨다면 은퇴 세대는 물론 미래 세대에게도 든든한 사회안전망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장기간 성실히 근로한 국민이 안심하고 노후를 설계할 수 있는 제도, 이것이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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