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관세 부과를 추진한 이후 뉴욕 월가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단어는 ‘테일 리스크(tail risk)’다. 스티브 도버 프랭클린템플턴 수석시장전략가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상황을 “테일 리스크”라고 지칭하며 “아마 괜찮을 가능성이 높지만, 정말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했다. UBS 수석이코노미스트인 조너선 핑글의 의견도 비슷했다. 그도 기자와의 줌 인터뷰에서 관세를 포함한 미국의 정책 불확실성으로 외국 자본이 빠져나갈 위험이 있다며 이를 테일 리스크로 꼽았다.
불확실성에 시장 심리 위축
테일 리스크는 정규 분포 그래프에서 꼬리처럼 보이는 양 끝부분, 즉 확률이 거의 0에 가까운 극단적 상황을 의미한다. 금융시장이나 경제에서 발생 가능성이 매우 낮지만, 한 번 발생하면 매우 큰 손실이나 충격을 가져오는 사건이 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세계 각국이 예상치 못한 범위와 강도로 관세 부과를 추진하는 데다 부과 시점과 대상을 번복한 것이 테일 리스크에 대한 두려움을 키우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등 지정학적 긴장이 이어지는 것도 테일 리스크 우려를 부추긴다. 월가에서 최근 남중국해를 둘러싼 필리핀과 중국의 영유권 분쟁이 새로운 지정학적 변수로 떠오른 것도 테일 리스크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보여준다. 예상치 못한 리스크가 연이어 생기자 이전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낮던 뉴스까지도 사람들이 신경 쓰기 시작한 셈이다.
정책적,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극도로 커지는 상황에선 작은 이슈도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를 급속도로 위축시킬 수 있다. 바람이 가득 찬 풍선이 소소한 자극에도 터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뉴욕증시 변동성이 커진 것도 예민한 투자심리의 단면일 수 있다. 국채 시장에 채권 자경단이 등장한 것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벌주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채권시장 투자자들의 불안심리가 행동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 이 같은 시장 심리는 테일 리스크의 파급력을 더욱 키운다.
韓 기업들, 유연하게 대응해야
테일 리스크를 키우는 불확실성이 비단 현시점만의 문제는 아니다. 경제의 불확실성은 모습을 달리한 채 언제나 있었다. 직전의 불확실성은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었다. 세계가 전염병으로 ‘록다운’(폐쇄)될 것이라고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나. 또한 록다운 상황에서 펜트업(보복) 소비로 오히려 기업들의 이익이 눈부시게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본 이도 없었다.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한 브렉시트를 비롯해 더 거슬러 올라가선 2008년 9월 15일 뉴욕증권거래소 폐장 직후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신청 역시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불확실성이었다. 개별적으로 보면 처음 겪는 일이지만 불확실성 자체는 시장이 늘 겪어온 상수다.
결국 불확실성은 언제나 있었고, 기업들은 고비마다 승자와 패자로 갈렸다. 그리고 승부를 가른 가장 큰 요인은 시장 변화에 적응하는 유연성이었다. 테일 리스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얼마 전 은퇴 선언을 한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의 말처럼 남들이 공포에 떨 때가 바로 기회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