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현지에선 한국 기업들의 20조 원 규모 투자와 긴밀해지고 있는 한미 간 경제 협력으로 들뜬 분위기였다. 조지아주 관계자는 “이곳을 선택한 한국 기업은 ‘조지아의 기업’이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도 했다. 그런데 불과 9개월 만에 조지아주에 다시 돌아와 구금소에 수감된 우리 국민 300여 명의 안부를 걱정하고, 유령 도시처럼 변한 공장을 둘러봤던 것이다.
공장 빨리 만들려던 게 체포·구금 이유
HL-GA에서 일했던 기업 관계자들은 자신들은 그저 공장을 조금이라도 빨리 만들려고 공을 들였던 게 전부였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현대차가 이곳에 여의도 4배 규모 부지를 확보하긴 했지만, 인력이 많은 동네도 아니고 필요한 기술을 갖춘 인력은 더욱 부족해 한국에서 사람을 데려다 쓸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미 이민당국이 적법한 비자를 내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단기 상용비자(B1)나 전자여행허가(ESTA)로 왔다”는 사연이 수두룩했다.결국 HL-GA의 많은 직원들은 신속하게 공장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일하다 미 이민당국의 쇠사슬에 묶였던 것이다. 손목, 발목, 허리에 수갑과 족쇄를 차고 이민세관단속국(ICE)의 홍보영상 속에서 총을 든 요원들에게 쫓겨 호송 버스에 올랐을 이들의 심정이 얼마나 처참했을지는 상상으로도 잘 안 느껴졌다.
풀려난 근로자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구금소 이야기는 더 기가 막힌다. 70명이 넘는 인원이 한방에서 지내기도 했고, 그 안에서 제대로 가려지지도 않은 상태로 용변을 본 경우도 있다. 구금소 관계자 중에는 아시아인을 비하할 때 쓰이는 제스처인 ‘눈 찢기’를 보이는 이도 있었다고 한다.
현지 동포들은 “한국 근로자들이 쇠사슬 모욕까지 받아야 할 정도의 중범죄자들이라면 왜 지난 정권에서는 이들의 비자 문제를 알면서도 공항에 ‘현대차 패스트 트랙 창구’까지 만들어 주며 대접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美 악수(惡手)로 ‘韓 역량’ 더 부각될 듯큰 상처를 남겼지만, 정부와 기업 그리고 동포사회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구금자들이 신속히 풀려나게 노력했고, 심각한 문제가 더 발생하지 않도록 한 것을 두고 한국인 특유의 ‘위기관리 능력’이 발휘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 기업과 인력들의 수준 높은 기술력이 입증됐고, 이들이 얼마나 미국에 필요한 존재인지가 부각됐다는 진단 역시 힘을 얻고 있다. 한국 기업의 지역경제 기여도 역시 다시 한번 재조명 받을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현지에선 “사태 전말이 알려질수록 ‘한국 기업과 인력을 제대로 대우해 줘야 한다’는 인식이 커질 것”이란 반응도 나왔다.
다만, 이번 사태로 트럼프 행정부, 나아가 미국에 대한 한국 국민의 반감이 커졌다는 건 미국의 악수(惡手)가 초래한 심각한 부작용으로 여겨진다. 이미 소셜미디어 등에선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동맹국이자 투자 파트너를 대하는 태도냐”,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도 중단하자”며 목소리를 높인다.
현재 미국은 한국에 ‘하루빨리 관세 협정에 사인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한국 정부는 25%의 관세 못지않게 ‘국민감정’도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은 미국이 과도한 조치로 스스로 초래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사태는 한미 신뢰의 근간에 큰 상처를 낸 결정적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임우선 뉴욕 특파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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