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衣食住)”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다. 헌법 또한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주거권을 명시하고 있다. 그만큼 ‘주거’는 인간의 본성과 깊이 맞닿아 있다. 누구나 안정된 집을 갖고 싶어 하고, 보다 나은 환경에서 살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나 이상과 달리 현실의 세계에서 모두가 동일한 조건의 집을 보장받을 수는 없다. 직장, 교육, 교통이라는 지리적 제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에서도 토지의 개인소유는 보편적이었다. 성주의 영지, 농장의 주인, 땅문서 등 부동산은 언제나 ‘사유(私有)’의 대상이 되어왔다. 결국 더 좋은 집을 갖고 싶어 하는 욕망은 결코 비정상이 아닌 인간의 본성이다.
전·월세로 남의 집에 산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편하다. 내 집이 아니기에 마음대로 고칠 수도 없고, 계약 때마다 임대인과의 갈등이 발생하기 쉽다. 임대인은 더 높은 수익을, 임차인은 더 낮은 비용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경제적 본능이다. 따라서 ‘내 집 마련’에 대한 욕구는 언제나 존재한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강남·서초와 다른 지역 간의 격차는 지금처럼 크지 않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27차례에 달하는 규제는 오히려 가격 폭등을 동반했다. 두 가지 요인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첫째, 초저금리로 인한 유동성 과잉. 둘째, 규제가 시장 불안을 자극해 되레 가격을 끌어올린 ‘규제의 역설’이다.
1인 1주택 원칙과 같은 비현실적인 규제, 양도세 완화 없는 보유세 강화, 임대차 계약 개정 등은 무주택 서민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세금 부담은 결국 임차인에게 전가되었고, ‘교육의 수요’가 집중된 강남·서초 지역은 더욱 견고한 불평등의 상징이 되었다.
정부는 3기 신도시 등 공급대책을 내놓았으나, 현실성이 떨어졌고 재건축·재개발을 방관함으로써 ‘공급 불안’ 심리를 키웠다. 전 국민이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상황에서, 이 정책들은 되레 수요를 자극하는 결과를 낳았다.
안타깝게도 현 정부 출범 이후에도 패착은 반복되고 있다.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 집값이 오른다는 ‘경제의 심리’를 꺾기에는 부동산 공급에 대한 공약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었다.
첫 번째 대책으로 등장한 ‘대출 규제’는 잠시 유동성을 억제했지만, 결과적으로 고소득 직장인의 내 집 마련을 가로막고 거래를 위축시켰다. 호가는 유지된 채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었다.
두 번째로 발표된 ‘9.7 공급대책’은 착공 기준 설정 외에는 실효성이 없었다. ‘명품을 원하는 국민에게 PB상품을 권하는’ 격이었다. 서울 중심의 수요에 맞서 외곽 공급에 치중한 탓에 시장 안정 심리를 회복하지 못했다.
결국 10·15 대책에서는 서울과 수도권 일부에 대한 전면적 규제가 추가되며, ‘규제가 규제를 낳는’ 악순환이 다시금 확인되었다. 부동산 시장은 이제 일종의 ‘신분제’ 구조로 굳어지고 있다.
향후 상황은 다음과 같이 예상된다.
첫째, 과도한 규제로 거래절벽이 나타나며 매물 잠김 현상이 심화될 것이다.
둘째, 교육 수요로 인해 3040 세대의 전·월세 수요는 지속될 것이며, 보유세 강화는 임차비용 상승으로 이어진다.
셋째, 가처분소득이 줄어들며 소비 위축이 불가피하고, 양도세 완화 역시 대출 규제와 토지거래허가제로 인해 효과가 제한될 것이다.
넷째, 규제지역 외 수도권 지역의 풍선효과로 비규제지역 집값 상승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다섯째, 높은 집값은 궁극적으로 한국은행이 금리를 낮추기 어렵게 하도록 하는 장벽으로 작용할 것이며, 이는 국채 매력도를 떨어뜨리며 환율 안정화에 저해가 될 것이다.
여섯째, 고환율 고착화는 수입 물가 상승과 부동산 PF 부실을 동시에 초래하며, 주택공급을 더욱 제한할 것이다.
결국 이러한 연쇄 작용은 다시 “집을 사야겠다”는 심리를 강화하게 된다. 정부가 말하는 ‘가격 안정화’는 착시일 뿐이다. 경기 침체와 소득 감소가 겹치면, 자산이 집중된 강남·서초 등은 더욱 견고해지고, 주변 지역은 급락할 것이다. 이는 결국 ‘한국형 부동산 카스트제도’의 도입으로 귀결된다. 앞으로 대한민국에서는 ‘어디에 집을 갖고 있느냐’가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종합하면, 지금의 정부는 시장과 인간의 본성을 무시한 채, 비현실적인 규제로 또 다른 규제를 낳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특히 10.15 부동산 규제는 단순한 정책 실패를 넘어, 부의 대물림과 지역 격차를 제도화하는 “부동산 신분제의 출발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부동산 시장의 문제 해결은 억제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공급의 예측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현일 (전 금융위원회 적극행정위원회 위원 / 전 서울투자진흥재단 설립 자문위원)

1 week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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