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첫 단추부터 잘못 꿴 K애니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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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첫 단추부터 잘못 꿴 K애니 정책

“지난해 캐나다 회사와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려던 계획을 접었습니다.”

국내 한 애니메이션 대표는 “말도 안 되는 정부 정책 때문에 사업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 회사가 캐나다 회사와 합작을 깬 건 비현실적인 한국의 콘텐츠 지원 제도 때문이다.

캐나다 정부는 요건에 맞는 애니메이션 업체에 제작비의 20%(완성작 기준)까지 지원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제작비를 업체별로 제한적으로 지원하다 보니 특정 회사에 배정되는 지원금이 턱없이 적다. 이 업체 대표는 “합작을 하려면 캐나다에 준하는 제작비를 지원받아야 하는데 그럴 수 없어 협상 과정이 불리하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세제 혜택도 마찬가지다. 국내 애니메이션 업체의 세제 혜택 한도는 3억원(2023년 기준)에 불과하다. 콘텐츠 강국인 일본(92억원)의 3% 수준이다. 태국(61억원)과 필리핀(7억5000만원)에도 뒤진다.

나눠 먹기식인 애니메이션 지원 제도는 한국경제신문 보도(10월 25일자 A1, 4면)에서도 잘 드러났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인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매년 수십 개 업체에 직·간접적으로 평균 3억원 안팎을 지원 하고 있다. 제작 능력을 감안하지 않고 대상 업체를 폭넓게 선정한 탓에 정부 지원 후 애니메이션을 제작하지 않은 업체가 부지기수였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다 보니 정부 제작 지원을 받은 애니메이션의 60%가량이 5년 넘게 제대로 제작되지 않았다. 정부의 사후관리가 부실해 예산 지원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 비율이 매년 줄었다. 2020년 정부 제작 지원을 받은 애니메이션 77편 중 55%인 42편이 제작됐으나 2023년 이 비율이 35%로 하락했다.

오래전부터 애니메이션업계에선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사후 제작비 지원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주로 자국에서 콘텐츠를 제작한 기업을 대상으로 일정 부분 제작비를 현금으로 돌려주거나 비용을 공제하는 방식이다. 미국과 유럽, 일본 같은 선진국에선 보편화된 제도다. 콘텐츠진흥원이 펴낸 ‘글로벌 영상 제작 허브화를 위한 해외사례 연구’에 따르면 이 제도를 도입한 국가는 2007년 12곳에서 2023년 112곳으로 급증했다.

하지만 한국은 세계적인 흐름을 외면하고 있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탓에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같은 대작은 고사하고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에 유통되는 한국 애니메이션도 찾아보기 어렵다. 하루빨리 K애니메이션 디스카운트에서 벗어나려면 정부는 “한국에 최적화된 지원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강문주 애니메이션제작협회장)는 업계 요구를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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