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전략은 장기, 책임자는 단기…연기금 CIO 임기 '엇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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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전략은 장기, 책임자는 단기…연기금 CIO 임기 '엇박자'

국민 노후 자금 1400조원을 굴리는 국민연금의 서원주 기금운용본부장 임기는 다음달 종료된다. 지난 3년간 역대 최고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연임 여부는 불투명하다. 성과에 따라 1년 단위 연장이 가능하지만 실제로 복수 연임에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다. 대부분 2~3년을 채우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백주현 전 공무원연금 자금운용단장도 임기 중 18년 만의 최고 수익률을 냈지만 ‘2+1년’ 임기를 끝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한국교직원공제회, 사학연금 등 다른 공적 연기금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처럼 국내 연기금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대부분 2~3년마다 교체된다. 기금 운용의 기본 철학이 ‘장기 투자’인데도 실제로 전략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책임자는 짧은 임기에 묶여 있다.

해외 주요 연기금의 투자 수장 임기는 한국과 사뭇 다르다. 미국 캘리포니아 교직원연금(CalSTRS) 직전 CIO인 크리스토퍼 에일먼은 2000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24년간 재임했다. 호주 최대 연기금인 오스트레일리언슈퍼의 마크 델라니 CIO 역시 2006년부터 19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일본 공적연금(GPIF)도 명목상 2년 계약제지만 성과 평가를 통해 장기 재계약이 가능하다. 미국 주요 공적연금의 CIO 평균 재임 기간은 6년 이상으로, 장기 철학이 일관성과 성과로 이어지는 구조를 제도적으로 보장한다.

국내 연기금 CIO 임기가 짧은 것은 소관 부처의 인사 관행이 법령상 산하 기관인 연기금에 그대로 투영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 행정안전부 산하 공무원연금 등 연기금은 중앙 부처 특유의 ‘순환 인사’ 관행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정권이 교체되면 관련 영향을 그대로 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반면 CIO가 장기간 재임한 CalSTRS와 오스트레일리언슈퍼는 이사회 중심의 독립 구조를 갖춰 정치 변화나 정권 교체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임기가 짧으면 투자 철학이 단절되고 리스크 관리 체계도 흔들린다. 특히 대체투자처럼 성과가 드러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 자산에서 불리하다. 전임자가 추진한 전략이 결실을 보기 전에 후임이 바뀌면 투자 실행의 연속성이 끊기기 쉽다. 한 국내 대체투자 운용사 대표는 “3년마다 수장이 바뀌는 구조에선 장기 파트너십을 전제로 협업하기 어렵다”고 했다.

기금 운용은 본질적으로 시간과의 싸움이다. 방향의 일관성이 유지돼야 신뢰와 수익이 쌓인다. 성과에 기반한 장기 재임이 가능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 한, 연기금의 장기 전략도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 있다. 전략이 장기라면 책임자 임기도 장기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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