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프리즘] 예산 법정 시한 준수, 헌법상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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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프리즘] 예산 법정 시한 준수, 헌법상 의무다

우리 헌법 제54조 2항은 ‘정부는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까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이를 의결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회계연도가 1월 1일부터 시작되니 예산안의 법정 처리 시한은 12월 2일이다. 이 조항은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강제 규정이다. 하지만 국회가 이 시한을 지킨 건 손에 꼽을 정도다. 2000년대 들어선 딱 세 번(2002년, 2014년, 2020년), 그것도 마지막 날 가까스로 통과시켰다. 헌법이 정한 국가 운영의 시간표를 국회가 상습적으로 어긴 것이다.

예산안 처리가 늦어지면 그 피해는 중앙정부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방정부는 국고보조금과 교부금 규모가 확정돼야 예산을 짤 수 있다. 처리가 지연되면 지방행정·복지·교육·인프라 사업까지 연쇄적으로 차질을 빚는 구조다. 헌법에 시한을 명시한 이유다.

이재명 정부 첫 예산안의 국회 심사가 본격화됐다. 지난 5일 공청회를 시작으로 10~11일 경제부처, 12~13일 비경제부처 심사가 이어진다. 17일부터는 증감액을 다루는 예산소위가 가동된다. 소위를 통과하면 예결위 전체회의와 본회의에서 의결해야 한다.

내년 예산안은 728조원. 올해보다 55조원(8.1%) 늘어난 ‘슈퍼 예산’이다. 표면상으론 확대 재정이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우려가 커진다. 적자국채 발행 규모가 110조원으로 역대 최대다. 올해 두 차례 추가경정예산으로 적자성 채무는 이미 900조원을 넘었다. 고령화로 복지·연금 지출이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런 속도의 재정 확대는 지속하기 어렵다.

여야의 충돌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여당은 정부 원안 사수를, 야당은 대폭 삭감을 공언하고 있다. 쟁점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이재명표 사업’으로 꼽히는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이다. 정부안에는 올해보다 1500억원 늘어난 국비 지원 1조1500억원이 담겼다. 국민의힘은 이를 ‘지방선거용 포퓰리즘 예산’으로 규정하고 삭감 1순위로 지목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경제와 골목상권 활성화를 내세워 밀어붙일 태세다. 관건은 정책 효과가 있는지다. 다수 연구는 지역화폐의 소비 증대 효과가 ‘제한적’이고, 자영업 매출 증가도 상당 부분 ‘대체효과’에 그친다고 본다.

국민성장펀드를 두고도 여야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이 펀드는 산업은행 정책기금과 민간자본에 정부 예산을 일부 태워 인공지능(AI)·반도체·바이오 등 6대 신산업에 투자하는 구조다. 정부는 ‘마중물’ 역할을 기대하며 1조원을 배정했다. 하지만 정부 주도 펀드의 수익률이 민간 펀드보다 낮다는 점은 고질적인 문제다. 투자 실패 시 손실은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재정 건전성도 논란거리다. 정부는 내수 회복을 명분으로 과감한 재정 지출을 강조하지만, 지금 추세라면 국가채무 증가 속도는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지출 확대는 미래세대에 고스란히 부담으로 돌아간다.

여야 모두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 여당은 정책 효과를 기준으로 ‘선택과 집중’에 나서야 한다. ‘빚잔치’라는 야당의 주장을 정치 공세로만 치부해서도 안 된다. 야당도 ‘삭감’ 자체를 성과로 삼아서는 곤란하다. 필요성이 입증된 사업에는 초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매년 반복되는 밀실 담합과 지역구 예산 끼워넣기 경쟁도 끝내야 한다.

최악의 국정감사로 여야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태여서 벌써부터 예산안이 법정 시한을 넘길 것이란 우려가 크다. 시한 준수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국회의 헌법상 의무다. 올해엔 반드시 시한 내에 처리해야 한다. 그것이 국회가 최소한의 책임을 다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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