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마이너스 수익률' 국내주식 투자 압박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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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마이너스 수익률' 국내주식 투자 압박해서야

국민의 노후자금 1200조원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의 첫 번째 기금운용 원칙은 ‘수익성’이다. 공적연금으로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나 사회적 책무를 고려하더라도 연기금의 본질은 수익 확보를 통해 미래 세대의 부담을 덜어주는 데 있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중기자산배분안을 통해 국내 주식 비중을 2029년 말까지 매년 0.5%포인트 줄이고 해외 주식은 늘리기로 한 배경이다. 당장 내년부터 국내 주식 비중을 14.4%로 0.5%포인트 낮추고, 해외 주식 비중은 39.9%로 3%포인트 대폭 높이기로 했다. 글로벌 성장 산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해 기금 고갈 시기를 늦추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대통령 한마디에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의 고민이 커졌다. ‘코스피지수 5000시대’를 공언한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연기금이 국내 주식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기금 적립금을 국내 증시 부양의 불쏘시개로 쓰겠다는 명분이지만, 국민 노후자금을 정치적 목적에 끌어들이는 포퓰리즘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자본시장에선 벌써 “정부가 연기금을 기업 통제 수단으로 쓰려고 한다”며 ‘연금 사회주의’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그 어떤 정치적 구호나 단기적 증시 부양 논리도 연금 재정의 장기적인 안정성보다 앞설 수는 없다. 현실은 숫자가 증명한다. 최근 3년간 자산군별 수익률을 보면 해외 주식은 16.5%로 6개 금융 부문 가운데 압도적 1위지만, 국내 주식은 -4.64%로 가장 저조하다. 운용 실패라기보다 낙후된 국내 산업 구조와 낮은 성장성, 규제 리스크 영향이 크다. 반면 미국 등 해외 주식은 인공지능(AI), 바이오 등 신산업을 이끄는 기업과 투자 친화적인 환경 덕분에 구조적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중기자산배분 방향이 국내 증시에 미치는 파급력도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보험료율을 올리는 연금개혁으로 적립 기금이 불어나면 국내 주식에 대한 절대 투자액은 오히려 늘어난다.

연기금의 독립성은 어떤 경우에도 보장받아야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수익률을 자랑하는 스웨덴 공적연금 산하 7개 펀드는 각각 독립적인 법인으로서 법률로 운용 자율성을 보장받는다. 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CPPIB), 일본 공적연금(GPIF) 등 다른 주요 해외 연기금도 정부가 운용 판단에 개입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보건복지부 산하 기금운용위가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국민연금과 대조적이다.

국민연금 기금 규모는 국내 명목 국내총생산(GPD)의 약 50%에 달한다. 국민 노후자금을 지키는 최선의 길은 정치가 아니라 수익성 원칙에 충실한 전문적 운용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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