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매니저의 하루는 무대가 아닌 객석에서 시작된다. 아직 불이 켜지지 않은 로비를 천천히 걸으며 적정 온도인지 확인하고, 좌석 하나하나를 살피며 공연장의 컨디션을 체크한다. 안전장치는 제대로 작동하는지, 통로가 막히진 않았는지, 모든 세세한 것들이 하우스 매니저의 눈을 거친다.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누군가는 이미 수많은 ‘시작 전의 일’을 끝내고 있는 셈이다. 그들의 손끝에서 관객이 편안히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완성되고, 그제야 비로소 음악이 들어설 자리가 마련된다.
공연이 시작되면 하우스 매니저의 역할은 훨씬 더 섬세해진다. 늦게 도착한 관객의 입장 시간을 조심스럽게 조율하고, 휴대전화 진동이나 좌석 삐걱거림 같은 작은 소음까지 신경 쓴다. 관객의 움직임과 무대의 흐름을 관찰하며 관객들의 몰입뿐만 아니라 연주자들이 온전히 음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하우스 매니저가 단순히 좌석과 통로를 관리하는 사람만은 아닌 이유다. 그들은 관객이 눈치채지 못하는 순간에도 공간을 다듬고, 질서를 설계해 공연이 원활히 흘러가도록 만든다.
하우스 매니저가 지키는 것은 단순한 물리적 질서가 아니다. 무대와 객석이 하나로 호흡하도록 만드는 보이지 않는 질서이다. 하우스 매니저는 공연장 안팎의 모든 흐름을 조율하며 무대와 객석 사이의 경계를 지키고, 두 세계가 조화롭게 맞닿도록 돕는다.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지며 관객의 속삭임이 잦아들고, 연주자가 등장하는 순간까지의 긴장된 공기. 이 모든 공연의 분위기가 하우스 매니저의 손끝에서 비로소 완성된다.연주자가 음악으로 무대를 채우는 동안, 하우스 매니저는 공연의 질서를 디자인한다. 달리 말해 연주자가 무대 위에서 청중의 시선을 받는 동안 하우스 매니저는 그 시선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공연장의 분위기를 다듬는다. 비록 스포트라이트는 받지 않지만, 하우스 매니저는 공연이 매끄럽게 진행되도록 조용히 공간을 다루며 공연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다.
하우스 매니저의 임무는 공연이 끝나도 이어진다. 관객이 모두 떠난 뒤에도 하우스 매니저는 여전히 자리를 지킨다. 그 순간에도 그들은 단순히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공연이 남긴 흔적들을 살피며 공간을 정리한다. 텅 빈 객석을 천천히 걸으며 떨어진 프로그램 책자를 줍고, 누군가 두고 간 소지품을 발견하면 조심스레 보관한다. 객석의 문이 모두 닫혔는지, 불이 제대로 꺼졌는지, 다음 공연이 무리 없이 진행될 수 있는지 모든 이슈를 하나하나 직접 확인한다.
박수가 사라진 자리에서 홀로 남아 정적을 정리하는 일, 그 침묵 속에서 공연의 마지막 장을 닫는 것이 바로 하우스 매니저의 역할이다. 즉, 음악이 끝난 뒤 찾아오는 그 정적까지가 하우스 매니저의 작품인 것. 그리고 그제야 안도 섞인 미소를 짓는다. ‘오늘의 공연도 무사히 끝났다’는 안도다. 결국 하우스 매니저의 일은 공연장에서 완벽한 평화를 지키는 일이다. 우리가 느끼는 평화가 그렇듯 공연이 잘 흘러가면 누구도 하우스 매니저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한다. 오히려 모든 게 잘 끝났고,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했다는 증거다. 그런 점에서 하우스 매니저는 공연의 완성을 책임지는 마지막 예술가이기도 하다. 악기를 직접 연주하지 않지만, 음악이 무대 위에서 시간 속으로 흘러갈 때 하우스 매니저는 그 시간을 담아낼 공간을 지킨다. 공연 내내 하우스 매니저가 조율한 시간의 흐름 덕분에 음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긴장과 감동을 유지한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관객의 마음에 남는 감동과 여운은 그 덕분이다.공연장은 단순히 음악만 울려서 완성되는 공간이 아니다. 하우스 매니저가 무대 밖에서 조율한 그 질서 위에서 음악은 마음 놓고 그 자체로 빛날 수 있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이 자리를 떠날 때 느끼는 잔잔한 행복과 평화로움, 때로는 벅찬 감정까지…. 이 모든 순간이 하우스 매니저가 매일 새롭게 만들어내는 가장 조용한 예술이다.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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