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완장과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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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7.21 17:34 수정2025.07.21 17:34 지면A31

“그 숱한 완장들에 그간 얼마나 많은 한을 품어 왔던가.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완장들을 얼마나 선망해 왔던가.” 1983년 출간된 윤흥길의 <완장>은 사람이 권력을 손에 쥐었을 때 어떻게 변하는지를 그린 소설이다. 주인공 임종술은 무능한 시골 건달이다. 마을의 유지가 그를 저수지 관리인으로 고용하고, 팔에 감시원 완장을 채워준다. 권력에 도취한 주인공은 낚시하는 사람들을 윽박지르고, 동창을 폭행하는 등 폭력적으로 변해간다. 요즘 말로 ‘갑질’ 관리인으로 바뀐 것이다.

[천자칼럼] 완장과 갑질

우리 현실 곳곳에도 임종술이 존재한다. ‘땅콩 회항’이란 말을 유행시킨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대표적이다. 연예계에선 스타일리스트를 함부로 대해 물의를 빚은 아이린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평범한 사람도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른다. 최근 한 유튜버가 여수의 식당에 방문해 음식 2인분을 시키고 방송을 진행하다가 20분 만에 쫓겨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식당 주인 갑질’이 화제가 됐다.

갑질은 공감 능력 결핍, 권력에 과도한 집착, 열등감 등에서 비롯된다. 사회의 영향도 무시하기 힘들다. 강자 중심의 관계 윤리가 공고한 사회일수록 갑질이 만연하기 십상이다. 과거엔 갑질 피해자들이 억울함을 속으로만 삭였다. 요즘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SNS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피해 사실을 알리고, 소송도 불사한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제정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이뤄진 갑질 신고만 4만 건에 이른다.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보좌관들에게 변기 수리, 쓰레기 분리수거 등의 업무를 강요했다는 게 핵심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여가부 장관을 지낸 정영애 씨는 그제 강 후보자가 국회의원 시절 지역구 민원을 강요하고, 뜻대로 이뤄지지 않자 부처 예산을 깎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갑질 의원을 장관으로 보낸다니 기가 막힌다”고 했다. 강 후보자 임명을 강행하기로 한 이재명 대통령의 부담이 한층 더 커진 셈이다. 소설은 주인공이 완장을 저수지에 던지는 것으로 끝난다. 현실 속 완장 사건 결말은 그렇게 될 것 같지 않다.

송형석 논설위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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