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도 팬층이 두터운 할리우드 배우 겸 감독 벤 애플렉이 제작과 주연을 맡은 영화 중 <아르고>가 있다. 1979년 이란 혁명 때 주이란 미국대사관 인질 사건에서 간신히 피신해 캐나다 대사관에 숨어 있던 6명의 미 대사관 직원을 구출하는 비밀작전을 다뤘다. 아르고라는 가짜 SF 영화를 만든다고 이란 혁명 정부를 속인 뒤 미 대사관 직원들을 캐나다인 영화 촬영 스태프로 위장해 탈출시킨 실화에 바탕하고 있다.
아르고의 소재가 된 미 대사관 점거 사건은 미국과 이란이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친미 팔레비 왕조를 축출한 호메이니 정권은 미국으로 망명한 팔레비의 소환을 요청했다. 미국 측이 이를 거부하자 호메이니는 “미국은 큰 사탄, 상처 입은 뱀”으로, 이스라엘은 “큰 사탄에게 기생하는 작은 사탄”이라며 공존할 수 없는 악마로 지목했다. 호메이니의 말에 자극받은 이란 대학생 300여 명이 미국대사관을 점거해 대사관 직원 52명을 장장 444일간 구금했다. 이때 점거 사건의 주동자가 이후 초강경파 이란 대통령이 된 아마디네자드다.
호메이니의 ‘큰 사탄, 작은 사탄론’은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끊임없는 분쟁의 출발점이었다. 1983년 이란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베이루트의 미 해병대 사령부를 공격해 미군 241명이 사망했다. 미국이 1980~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라크를 지원한 영향으로 이란은 막대한 피해를 봤다. 굴욕적 휴전협정 이듬해인 1989년 호메이니가 사망하고 하메네이가 최고지도자로 들어서, 이후 36년간 신정 독재가 이어졌다. 2002년 아들 부시 대통령이 이란을 규정한 표현이 ‘악의 축’이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충돌은 그나마 이란 측 대리 세력과의 ‘그림자 전쟁’이었으나, 이제 쌍방간 직접 전쟁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급기야 트럼프 2기 출범 5개월 만인 어제 미국이 ‘끝장 폭탄’ GBU-57 벙커버스터 12발로 이란 핵시설의 심장부인 포르도의 우라늄 농축 시설을 폭격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미국 공습의 세세한 결과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가장 궁금한 사람 중 하나가 북한 김정은일 것이다.
윤성민 수석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