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9월이면 경기 과천시 갈현동 밤나무 단지는 유난히 분주해진다. 밤송이 사이를 누비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가시 돋친 껍질을 조심스럽게 까는 부모의 손길, 그리고 그 곁에 서서 묵묵히 가을을 바라보는 어르신들의 시선까지. 과천의 ‘밤줍기 행사’는 단순한 체험을 넘어 세대와 계절, 자연과 사람이 만나는 특별한 축제다.
한 아이가 필자의 손을 꼭 붙잡고 물었다. “시장님, 밤이 왜 이리 따뜻해요?” 아이의 손에 막 껍질을 벗긴 셀렘의 온기가 전해진 모양이다. 자연 속에서 자기 손으로 뭔가를 얻는 기쁨, 그것이야말로 이 도시가 줄 수 있는 따뜻함이고 진짜 교육이고 예술이다.
과천은 서울과 가장 가까운 자연도시이자 문화와 예술을 일상으로 끌어안는 도시다. 우리는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 개발 속에서도 전통과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을 지켜 왔다. 그 중심에 과천만의 자랑인 ‘줄타기’는 이 도시의 정신을 상징하는 대표적 전통예술이다.
줄타기는 단순한 곡예가 아니다. 위태로운 외줄 위에서 농담과 해학으로 세상을 풍자하고, 삶의 애환을 노래하는 우리 민족 고유의 공연예술이다. 과천의 줄타기는 국가무형문화재 제58호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세계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무엇보다도 자랑스러운 건 이 전통을 과천에서는 일상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도심 속 공터에서, 시민회관 앞마당에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해설과 함께 줄타기가 펼쳐지는 날이면 늘 같은 감정을 느낀다. 전통은 박물관에 있는 유물만이 아니라 숨 쉬고 움직이며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 이야기’라는 확신이 든다.
줄타기를 처음 본 어느 새내기 시민은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줄 위에서 한 걸음씩 내딛는 광대의 모습은 불안하지만 멈추지 않고, 균형을 찾는 모습이 자기 인생과 비슷하다.” 이것이 과천이 지닌 문화의 힘이다.
과천은 도심 유휴지를 활용한 ‘재즈피크닉’, 수요일엔 ‘수요 음감회’, 화요일엔 ‘오페라 보러화요’, 과천시립교향악단의 ‘찾아가는 음악회’ 등 자연과 문화를 함께 누릴 수 있는 일상적 예술 공간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오고 있다. 예술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이웃과 나누는 한 끼의 웃음, 자연을 매개로 나누는 감정의 교류 속에 있다.
아이는 밤나무 아래에서 세상을 배우고 어른은 외줄 위에서 인생의 균형을 다시 떠올린다. 이 도시의 진짜 힘은 바로 ‘함께 살아내는 감동’에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과천은 자연과 사람이, 전통과 미래가 함께 손을 잡고 걷는 중이다. 그 길 위에서 우리의 일상이 예술이 되는 과정을 함께 지켜보는 것이 시장으로서 가장 큰 기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