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 원천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 역량만큼이나, 이를 산업 현장에서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융합 역량 또한 매우 중요하다. 전자, 통신을 시작으로 은행·보험·증권·카드 같은 금융 영역과 자동차·조선해양·로보틱스·건설·제철에 이르는 제조·엔지니어링 분야를 비롯해, 법률, 교육, 헬스케어는 물론 최근에는 국방이나 공공행정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다양한 도메인에서 산업 인공지능 전환(AX)을 통한 혁신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필자 역시 다수의 대기업 및 공공기관과 손잡고 AI 융합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비용 절감과 생산성 극대화를 체감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AX 혁신의 흐름은 대부분 대기업과 공공기관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중소·중견기업은 AI 솔루션을 개발·도입하기 위한 초기 투자 비용 부담과 함께, 도입 이후에도 운영·유지할 AI 전문 인력마저 부재한 것이 현실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산업 생태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이들 구성원이 AX에서 지속적으로 소외된다면, 대한민국의 국가 산업 경쟁력마저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산업 AX에 대한 정부의 마중물 역할이 절실한 시점이다. 스마트폰 앱스토어처럼, 그동안 민간에서 개발한 AI 솔루션을 등록·검색·구매할 수 있는 클라우드 기반 'AX 마켓플레이스'를 구축해야 한다. 중소·중견기업은 필요할 때 해당 클라우드 서비스와 AX 솔루션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되, 사용량만큼만 비용을 지불하는 구독형 서비스형소프트웨어(SaaS) 모델을 통해 중복 투자와 초기 비용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아울러 산업 AX의 조기 확산을 위해 영세 중소기업이나 중견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보조금제도나 세제 혜택 정책도 수반되어야 한다. 예컨대 AI 클라우드 이용료에 최대 80%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이용료의 일정 비율을 세액 공제해주는 방식이다. 공공 AX를 통한 모범 사례 창출이나 지역별 AI 클러스터와 연계한 현장 실증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면 이후 자발적 확산을 유도하는 토대가 될 수 있다.
그간 정부 주도의 플랫폼 구축 시도가 여러 차례 실패한 이유는 개발 과정에 대한 단발성 지원에 머물러 현장 사용성과 영속성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산업 AX 확산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 법적·예산적 기반을 확고히 하고, '개발 단계'에서의 일회성 지원이 아닌 수요 기반의 '활용 단계' 전 주기에 걸친 지속적인 지원 체계 마련을 통해 AX 일상화의 촉매 역할을 해야 한다.
글로벌 경쟁 구도 역시 긴박하다. 미국과 중국은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과 병행해 산업·공공 AX를 동시다발적으로 강화하며 AI 패권 경쟁을 가속화하고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산업 AX는 다른 국가들도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서 이제 시작하는 단계이므로, 정부의 선제적 집중 투자를 통해 국내 중소·중견기업이 빠르게 AX 생태계에 합류한다면, 충분히 글로벌 AX 선도국 반열에 오를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만큼 다양한 산업군이 고르게 발전한 국가는 전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중소·중견기업이 AX를 통해 업무 효율성과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다면, 우리나라의 산업 경쟁력도 한층 더 강화될 것이다.
AI를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AI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국가의 미래를 결정짓는다. AI 대전환-산업·공공 AX를 통해, 다가올 '대 인공지능 시대'에 대한민국이 AI G3를 넘어 AX G1 선도 국가로 도약하기를 기대한다.
김동환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 초거대AI추진협의회 부회장·포티투마루 대표이사 crisp@42Maru.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