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은 지난 3일 ‘이사의 충실 의무를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 ‘일정 규모 이상 상장사의 전자주주총회 의무화’, ‘사외이사 명칭을 독립이사로 변경하고 독립이사 비율을 4분의 1에서 3분의 1로 상향’ 등의 내용이 담긴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사외이사를 감사위원으로 선출할 때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을 합산 3%로 제한하는 강화된 ‘3% 룰’도 포함됐다. 여당은 한술 더 떠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1인에서 2인으로 확대하는 더 센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상법 개정안의 핵심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 및 주주가치 제고를 통해 투자심리를 개선하고, 시장 신뢰를 높이는 데 있다. 부동산시장에 쏠려 있는 자금을 자본시장으로 이전하고, 이를 토대로 기업의 발전을 도모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정책 의도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경제계에선 ‘기업에 지나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특히 집중투표제 의무화는 문제점이 적지 않다. 첫째, 집중투표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상응하는 제도로 볼 수 없다.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러시아, 중국, 대만, 사우디아라비아 등 4개국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본시장의 선진국이라고 하는 어느 나라도 집중투표제를 활용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의무적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둘째, 집중투표제 의무 도입은 단기 수익을 노리는 헤지펀드에 유리하다. 헤지펀드가 감사위원 분리 선임, 3% 합산 룰, 집중투표제 등을 활용하면 기업의 경영권에 큰 위협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대기업이 외국 자본에 넘어가지 말라는 법이 없다. 과거 SK·소버린 경영진 분쟁 사태를 통해 투기자본의 먹튀 전략이 기업에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주주’로까지 확대하는 내용 등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개인투자자들은 더 많은 것을 바란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추진을 요구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의 부작용은 작지 않다. 자사주 소각은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 수가 줄어들어 주당순이익(EPS)이 상승하는 유인책에 해당한다. 하지만 자사주는 공격적 기업 인수합병(M&A)에 대처할 수 있는 방어용으로 활용되고 있다. 외국 투기자본에 의한 M&A 가능성은 커지는데, 방어할 유일한 기제를 박탈하는 것은 또 다른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자본시장 선진화 도약을 위한 1차 상법 개정안이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했다. 이 상황에서 다양한 부작용을 양산하는 집중투표제 의무 도입 등을 다시 서두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도입에 따른 부작용과 문제점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대비책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