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안보 위한 전담조직, 기술패권 시대의 필수선택[기고/김성국]

10 hours ago 2

김성국 연세대 첨단융합공학부 교수

김성국 연세대 첨단융합공학부 교수
공학자로 살기 어려운 시대다. 연구실과 산업 현장에서 기술 혁신에만 몰두하면 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우리가 개발한 기술이 국제정치의 파고를 넘어설 수 있는지, 나아가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안보자산이 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하는, 그야말로 ‘기술이 안보’인 시대의 한복판에 서 있다.

과거의 성장을 이끌었던 국제적 분업과 자유무역 질서는 미중 기술패권 경쟁과 노골적인 보호무역주의 앞에 힘을 잃고 있다.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AI) 같은 첨단기술은 국가의 사활이 걸린 전략무기가 됐다. 특정 기술에 대한 수출 통제, 핵심 품목에 대한 공급망 재편 압박, 동맹국을 향한 생산기지 이전 요구 등은 우리 기업이 마주한 현실이다.

이러한 엄중한 상황에서 외교부가 경제안보를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하고 전문적 대응을 강화하겠다는 소식은 반갑다. 정부가 위기의 본질을 정확히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긍정적인 신호다.

지금의 위기는 본질적으로 외부로부터의 충격이다. ‘집안 문제’가 아니라 ‘바깥에서 온 험상궂은 손님’이다. 특정 기술의 수출 통제, 공급망 재편 압박 등은 모두 국경 밖에서 시작된 지정학적 리스크다. 외부의 위협을 분석하고 동맹과 적을 구분하며, 국익을 위한 밀고 당기기에 능한 외교부가 이 문제의 해결사로 나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 역할은 특정 산업을 육성하는 산업정책을 넘어선다. 산업정책이 우리의 펀더멘털을 키우는 데 집중한다면, 경제안보는 지정학적 위험을 관리하고 국가의 생존 전략을 짜는 리스크 관리에 해당한다. 물론 부처 간 유기적인 협력은 새로운 조직의 가장 큰 숙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부처 이기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외부의 변화를 빠르게 탐지해 신속히 대응 전략을 마련하는 구심점의 문제다.

경제안보는 개별 산업의 육성을 넘어 외교, 안보, 기술, 경제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외부의 불확실성에 맞서는 작업이다. 거친 파도를 내다보고, 외국과 협상해 경우에 따라서는 협력을, 때로는 경쟁을 선택해야 한다. 양자 또는 다자간 교섭을 주 업무로 해온 외교부가 맡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이유다.

다만 이 새로운 전쟁에 임하려면 새로운 무기가 필요하다. 과거의 통상 외교가 관세율이나 시장 접근성에 집중했다면, 지금의 경제안보 외교는 반도체 회로의 선폭이나 양자기술의 파급력과 같은 깊이 있는 과학기술적 통찰을 요구한다. 특정 기술이 동맹 관계에 미칠 영향을 살피고, 새롭고 강력한 무역장벽인 기술 통제와 제품 생산 및 통상에 관한 국제 규범 형성 등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기술과 외교를 융합하는 새로운 조직이 필요한 이유다. 경제안보 전담조직이 새롭게 꾸려진다면 기업, 대학, 연구소와 촘촘한 민관학 연계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상시 가동해야 한다. 잠재적 위협에 대한 조기 경보 시스템을 함께 만들고, 국제 규범 형성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공동 전략을 수립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한다.

과학기술이 외교의 언어가 되고, 외교가 국제적 기술 협력의 최전선이 돼야 한다. 외교부가 경제안보의 방파제를 맡을 때, 비로소 공학자들은 ‘국제정세 분석’이라는 부업에서 벗어나 다시 회로를 제작하고 코딩하는 본업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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