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백 마디 말보다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심 어린 한 마디의 힘이 클 때가 있다. 이동은도 생애 첫 우승 직후 쏟아진 수많은 축하 메시지 중에서도 “고생했다”는 짧은 한마디가 가장 가슴을 울렸다고 한다.
27일 강원 평창 버치힐CC(파72)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맥콜·모나 용평 오픈(총상금 10억원) 1라운드가 끝난 뒤 한국경제신문과 만난 이동은은 “(우승하고 난 뒤) 확실히 심적으로 많이 편해졌다”며 “여유가 생기고 쫓기는 마음이 사라지니 좀 더 편한 플레이가 되는 것 같다”고 웃었다.
이동은은 지난 15일 한국 여자골프 최고 권위의 대회인 제39회 한국여자오픈 골프선수권대회에서 꿈에 그리던 생애 첫 승을 거뒀다. 지난해 데뷔한 그가 42번째 대회 출전 끝에 들어 올린 우승 트로피다.
이동은은 최근 2주간 수많은 축하 메시지를 받았다고 한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메시지에 대해 묻자 그는 “너무 많은 축하를 받아 기뻤다”면서도 “메인 후원사인 SBI저축은행의 김문석 대표님이 ‘정말 고생했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 한마디가 저에겐 큰 위로가 됐다”고 답했다.
이동은은 지난 2022년 국가대표로 뛰던 시절부터 SBI저축은행의 후원을 받았다. 2023년 정식 계약을 맺었고 올 시즌을 앞두고 재계약을 체결했다. 이동은은 “힘들었던 시기를 함께했기에 저에게는 애정이 많은 스폰서”라며 “제가 기회를 잡지 못하는 등 오랫동안 우승을 못하고 있었을 때도 묵묵히 기다려주시면서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늘 감사했다”고 설명했다.
이동은은 남다른 ‘골프 DNA’로도 유명한 선수다. 아버지는 한국프로골프(KPGA)투어에서 20년 가까이 활동한 이건희 씨, 어머니는 KLPGA투어 준회원인 이선주 씨다. 그런데 정작 아버지 이건희 씨는 이동은이 골프 선수가 되는 걸 극구 말렸다고 한다. 얼마나 어렵고 힘든 길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동은은 “어렸을 때부터 밖에서 뛰어노는 걸 좋아했는데 골프를 칠 때마다 매일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며 “골프가 너무 좋아 아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였던 것 같다”고 했다.
부모님에게 재능을 물려받은 이동은은 데뷔 시즌인 지난해 평균 254야드의 장타를 날리며 방신실, 윤이나에 이어 장타 부문 3위를 기록했다. 올 시즌엔 방신실은 제치고 장타 1위(평균 260야드)는 물론 그린 적중률에서도 1위(78.5%)를 달리고 있다. 이동은은 “올해 들어 장타는 물론 정확도도 좋아졌다”며 “약점이던 퍼팅도 좋아진 게 첫 승의 원동력이 됐다”고 했다.
김민별과 방신실 등 먼저 우승한 친구들을 바라보며 자극을 받았던 이동은은 이제 더 높은 곳을 향해 먼저 치고 올라서겠다고 다짐했다. 상금랭킹 3위(5억3204만원)인 그는 “올 시즌 목표는 상금왕”이라고 당당하게 밝히며 “내후년 미국 무대에 도전하는 것도 장기적인 목표”라고 했다. 그러면서 “세계랭킹(현재 58위) 등의 조건이 충족되면 올해 브리티시 여자오픈 등 해외 메이저 대회도 도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평창=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