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 해도 우울해요” 정신과 찾는 청소년… 답은 ‘뇌 건강 관리’에 있다[이진형의 뇌, 우리 속의 우주]

10 hours ago 2

세계 청소년 7명 중 1명 정신질환
韓 소아-청소년 16.1%도 경험해
어릴 때부터 디지털 자극에 노출… 뇌 발달 중 같은 자극에도 손상 커
스트레스가 질환으로 발전 않도록… 뇌 건강검진 등 관리 필요한 시대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당연히 올백(all 100)을 맞았어야지. 겨우 1점 차이로 이겨놓고 웃니? 만족해?” 드라마 ‘스카이캐슬’에 나오는 대사다. 이런 대사가 인기 드라마의 명대사로 꼽힌다는 건,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는 뜻이다. 실제 입시 학원가에는 정신과가 꼭 있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한창 건강해야 할 나이에, 미래를 향한 꿈에 부풀 시기에 정신과에 가야 할 정도의 어려움이 있는 청소년이 많다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다. 수험생의 스트레스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정신질환은 최근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그에 따른 정신장애의 증가는 순전히 과열 경쟁 탓일까?》보건복지부의 2022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어린이, 청소년의 16.1%가 정신장애를 경험했다. 미국에선 2023년 청소년 정신질환 진단이 2016년 대비 35% 증가했다. 특히 불안장애는 61%, 우울증은 45% 각각 늘었다. 전 세계적으로 10∼19세 청소년 7명 중 한 명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장 흔한 정신장애로는 불안장애,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가 있다. 불안장애는 10∼14세의 4.4%, 15∼19세의 5.5%에서 발병한 것으로 조사됐다. 우울증은 10∼14세에서 1.4%, 15∼19세에서 3.5%가 증상을 보였다. ADHD는 10∼14세에서 2.9%, 15∼19세에서 2.2%가 발병했다. 조현병도 15∼19세에서 0.1%가량 보고됐다.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을 위한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매우 시급한 과제이다. 동시에 부작용 우려가 큰 향정신성의약품이 남용되는 것도 문제다. 특히 수험생이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면서 ADHD 치료제를 남용해 건강을 해치는 경우가 일어나고 있다.

오늘날 청소년들에게 왜 이러한 정신장애가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 이들은 이전 세대와 크게 다른 세상에서 자라났다. 아주 어릴 때부터 뇌가 끝없이 많은 자극에 시달려 왔기 때문이다. 그 어느 세대보다 첨단과학의 발전으로 인한 많은 편의성을 누렸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스마트폰, PC, 게임기 등을 통해 끝없이 들어오는 자극 속에 살고 있다.

많은 경우 그 자극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중독 가능성에 노출돼 있다. 각종 디지털 기기를 통해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불완전한 관계에 따른 스트레스, 전통적인 관계의 단절로 인한 고독에 시달리고 있다. 성인들도 같은 자극에 시달리지만,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뇌 발달 과정에 있기 때문에 같은 자극에 대한 손상의 정도가 더 클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성인이나 어린이, 청소년이나 디지털 미디어에서 자극을 받은 시간의 총량은 비슷할 것이기에 어린 나이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다.

이러한 디지털 기기 중독은 수면의 질 또한 떨어뜨린다. 밤이 되면 할 일이 없고, 암흑 속에서 잠을 잤던 세대와 비교했을 때 현재의 어린이, 청소년들은 밤새도록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많다. 스마트폰의 울림 소리, 각종 디지털 기기의 불빛 속에서 잠들기 때문에 수면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수면의 질은 뇌 건강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어서 이러한 메커니즘이 정신질환을 유발하는 중요한 요소라 생각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 인터넷을 없애고 스마트폰과 PC를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술의 발전은 역행할 수 없는 흐름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선택지가 하나뿐이다. 기술의 혜택을 계속 누리면서도 심각한 정신질환에 대한 걱정에서 해방되려면 새로운 자극으로 인한 손상을 역행할 수 있는 뇌 건강 관리 기술이 필요하다.

뇌에 대한 자극이 훨씬 적었던 시기에는 필요성이 적었던 뇌 건강 관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필수 사항이다. 지속적으로 뇌의 건강을 관리하기 위해 모니터링을 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관리를 해야 한다. 필요하면 치료도 받아야 한다. 지금까지는 뇌에 대한 지식의 부족으로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어려웠다. 하지만 빠른 기술 발전으로 가까운 미래에 이는 바뀔 것으로 보인다. 뇌파 측정을 통해 뇌 기능을 진단하는 기술은 상용화돼 널리 사용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를 바탕으로 직접 뇌 자극으로 인한 변화를 복구하는 치료법도 곧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우리 뇌가 기술의 편의성을 많이 누리는 만큼 뇌 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자극에도 노출돼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특히 어려서부터 자극에 노출된 어린이와 청소년, 특히 수험생은 집중적인 스트레스가 질환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평소 관리가 필요하다. 우리가 육체노동을 덜 하게 되면서 일부러 헬스장에 가서 신체 단련을 하게 됐듯, 뇌가 심하게 자극을 받는 이 시대에는 뇌 건강 검진을 지속적으로 받고 그에 따른 관리와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 마음이 건강한 부모와 자녀라면 시험에서 ‘1점 차이’를 논하며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을 것이다. 설사 논하더라도 그것이 질병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힘을 갖게 될 것이다.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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