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의 한 소녀에게 보내는 편지[안드레스 솔라노 한국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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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소설가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소설가
영국 밴드 ‘람브리니 걸스(Lambrini Girls)’의 팬인 강원 영월군 소녀에게.

지금쯤이면 예기치 못했던 사고에서 회복됐길 바랍니다. 크게 실망했을 테지만,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정말이에요.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단순한 사고였을 뿐입니다. 저는 2018년부터 매년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 관객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당신은 강원의 영월에서, 저는 서울의 후암동에서 강원 철원군까지 갔죠.

올해의 축제는 정말 특별했습니다. 같이 갔던 모두가 입을 모았어요. 그날의 평화로운 분위기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죠. 분명히 그랬을 겁니다. 특히 지난해 12월부터 올 6월까지 한국은 매우 복잡하고 긴장감으로 가득 찬 시간이었습니다. 일련의 사건이 일단락된 후 철원에 모인 축제의 관객들. 그러니까 당신처럼 젊은 청소년과 청년, 중년층, 인근 마을의 노인, 복무 중이었던 군인이 그 장소에서 ‘평화’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진정으로 경험했습니다. 이 단어는 대개 전쟁이라는 맥락에서 설명되거나 추상적인 정신 상태로 연결되곤 합니다. 그러나 축제 속에서 평화라는 단어는 자연과 함께 열린 공간에서 타인과 함께 있을 때 느끼는 충만함과 생명력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열린 공간에서 자연에 둘러싸여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느껴지는 완전함 같은 거죠.

누군가 제게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당신은 이번 축제에 출연한 영국의 밴드 람브리니 걸스의 팬이라고요. 솔직히 말하면 많이 놀랐습니다. 강원의 광산마을에서 나고 자란 어린 학생이 이제야 세계 무대에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영국의 바닷가마을 브라이턴 출신 펑크록 밴드의 팬이라니요. 오아시스처럼 유명하지도 않고 팝가수나 아이돌도 아니에요. 원초적인 에너지로 가득 찬 3인조 인디밴드죠. 유럽 페스티벌의 작은 무대를 누비는 그룹인데, 당신이 자신의 또래인 이들의 매력을 발견했네요.

당신의 이야기를 들은 뒤 영월을 비롯해 강원 지역의 광산마을에 대해 찾아보게 됐어요. 그런데 그 역사가 어찌나 흥미로운지 작가로서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1980년대 석탄 광산으로 가장 유명한 곳은 태백이었지요. 반면 영월은 텅스텐 마을이었습니다. 당시 태백 주민들은 경제붐을 겪으며 ‘태백에는 개들도 1만 원짜리 지폐를 가지고 다닌다’는 농담이 돌았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석탄 수요가 감소하면서 광산이 폐쇄되기 시작했고 마을은 비어갔습니다. 거주 인구가 12만 명에서 4만 명으로 줄었습니다. 당신의 마을도 비슷한 상황이겠지요.

그러던 중 2019년 마을에 주민을 유치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등장했습니다. 정부에서 새 교도소를 그곳에 설립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3년 후, 법무부는 이를 승인했고 2028년에 1500명 수용 규모의 교도소가 개소될 예정입니다. 과거에 주민들은 마을에 이런 시설을 짓는 것을 반대했지만, 오늘날에는 지역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됐네요. 이러한 내용을 다룬 기사를 보고 작가로서 머리가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소설이나 드라마를 위한 기막힌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죠. 한때 부유했던 광산마을에 최신 기술로 무장한 새 교도소가 들어서며 두 세계가 충돌하고 삶이 변하며 비극과 행복이 매일 반복되는 이야기 말이죠. 드라마나 소설에 등장하는 경찰서, 학교, 회사, 치킨집보다는 다채로운 설정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영월에서 왔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인 보고타에서 처음 콘서트에 갔던 날이 생각났습니다. 1990년대였고 저는 열여섯 살이었어요. 보고타의 가장 어두운 시기였습니다. 거리에는 불안과 폭력이 가득했지만, 어느 날 오후 라이브 클럽에서 태어나 처음 본 한 밴드의 공연이 제 삶을 바꿔놨어요. 음악이 저의 유일한 탈출구가 됐죠. 저와 같은 세대의 수많은 사람들처럼요. 부모님은 제가 방에 붙여 놓은 밴드 ‘더 큐어(The Cure)’의 포스터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어요. 이상한 머리 스타일을 하고 짙게 눈화장을 한 남성 밴드를요.

제가 처음 본 공연도 펑크록 밴드의 공연이었습니다. 당신처럼 사고를 당하지는 않았지만, 그 콘서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유를 맛봤던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니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춤을 추면 많은 일이 일어나요. 사람들이 넘어지기도 하고 의도치 않게 몸을 부딪치기도 하죠. 더욱이 한국의 축제에서는 사람들이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기꺼이 돕는 모습도 많이 봅니다. 그러니 빨리 회복해서 다시 즐거운 축제의 현장으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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