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제균 ‘해운대’
장마철이 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비 오는 날의 멜랑콜리한 그런 영화가 아니라, 억수같이 쏟아지는 장대비처럼 가슴이 섬뜩해지는 재난 상황의 긴박함을 담은 영화, ‘해운대’다.
한여름 비치파라솔이 알록달록한 장관을 이루는 해운대 해수욕장에 거대한 쓰나미가 밀어닥친다.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쓸려나가고 광안대교가 붕괴되는 거대한 스펙터클이 펼쳐진다. 하지만 그 쓰나미급의 스펙터클만큼 이 영화에서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 건, 그 재난 상황 속에서 피어나는 평범한 인간 군상들의 따뜻함이 만들어낸 감동의 쓰나미다.
죄책감 때문에 좋아하는 마음을 직접 꺼내놓지 못하는 만식(설경구), 자신이 아버지라는 사실을 모르는 딸 앞에서 ‘아저씨’ 행세를 해야 하는 김휘(박중훈), 목숨을 구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박봉의 삶으로 무시당하며 살아가는 119 구조대원 형식(이민기), 뭐 하나 잘하는 것 없이 엄마 속만 썩이며 살아가는 동춘(김인권)…. 그들은 눈에도 잘 띄지 않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들이닥치는 쓰나미는 그 보통의 삶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드러내 준다.해운대에 놀러 왔다가 구조된 뒤 형식에게 첫눈에 반한 희미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 같은 사람을 뭐라 그러는지 알아요? 당신은요…. 딱 오후 3시 같은 사람이에요. 진짜 어정쩡하잖아요, 오후 3시. 뭘 하기에는 너무 늦고 그렇다고 그만두기에는 너무 이르고….” 하지만 쓰나미가 드러내 준 것처럼 세상은 어쩌면 그 오후 3시 같은 사람들에 의해 지켜지고 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폭염 속에 허덕이다가도 때 되면 어김없이 장마는 시작된다. 시원해질 참에 안타까운 재난도 반복된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오후 3시 같은 사람들 덕분에.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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