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혁신 시스템이다. 구글, 엔비디아, 테슬라 등 글로벌 테크 기업들이 이곳에서 탄생했고, 오늘도 전 세계에서 몰려든 창업가와 벤처 자본이 실패와 재도전을 거듭하며 미래를 만들고 있다. 기술 집적지를 넘어 인재·자본·문화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살아 있는 생태계다.
한국의 테헤란밸리도 주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스타트업 지놈은 최근 리포트에서 서울 창업 생태계를 세계 8위로 평가했다. 이 순위는 도시별이기 때문에 국가 단위로 보면 미국, 영국, 이스라엘, 중국에 이어 네 번째다. 정책 드라이브와 자금 투입이라는 정부 주도형 모델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두 생태계는 높은 창업 열기와 우수한 인재, 기술 혁신을 지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테헤란밸리는 더 성장해나가는 데 몇 가지 강력한 도전에 직면한 것이 현실이다.
가장 큰 과제는 글로벌 역량 보완이다. 실리콘밸리의 창업자들은 처음부터 세계 시장을 겨냥한다. 회의실에선 다양한 악센트가 뒤섞이고, 국적보다 아이디어가 우선이다. “여기선 이력서보다 ‘다른 시각’을 더 높이 평가한다”는 말은 단지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다. 에어비앤비는 초기부터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다양한 사용자 피드백을 반영하면서 성장했다. 이에 비해 테헤란밸리는 글로벌 관점이 부족하고 해외 벤처 자본의 관심도 낮다
역동성 부족도 문제다. 실리콘밸리에선 실패를 ‘다음 성공을 위한 베타테스트’라고 부른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점심 전에 피드백을 받는다”는 말처럼 실행 속도도 빠르다. “출근길에 고속도로 출구를 잘못 나왔다가 다른 회사에 취직했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인재 유동성과 재도전 문화가 유연하다. 사업 실패 후에도 다양한 스타트업을 창업하며 혁신을 이어가는 페이팔 마피아가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 한국은 실패를 용인하지 않고, 인재 유동성과 재도전의 문턱도 높다. 사업에 실패했음에도 폐업도 못 하고 있는 ‘좀비기업’이 생태계의 큰 부담인 상황이다.
자율성의 제약도 과제다. 실리콘밸리는 개인 엔젤투자부터 벤처캐피털,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각종 연기금 등 자본의 종류와 출처가 다양하며, 개별 생태계 구성원의 자율적인 판단 그리고 그 결과의 총합으로 생태계의 건강이 유지되고 발전해왔다. 테헤란밸리는 공적 자금 의존도가 여전히 높다. 초기 성장 단계에서는 효과적이었지만, 지속 가능성과 글로벌 경쟁력 측면에서는 한계로 작용해 다음 단계로의 성장을 위해선 민간 주도 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글로벌 지향성, 역동성, 민간 중심의 생태계 리더십은 테헤란밸리의 다음 성장 과제다. 우수한 인재와 강력한 배후 산업, 그리고 누구보다도 적극적인 정부를 가지고 있는 우리의 장점을 살리면서 이 과제들을 해결해 궁극적으로는 실리콘밸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테헤란밸리를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