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허정]관세협상 실패한다면, 한국 경제가 치를 기회비용

6 hours ago 2

美 “25% 상호관세” 서한 단순한 경고 아냐
쌀-소고기-사과 등 완강히 방어하려 든다면
반도체 등 高관세-공급망 재편 압박할 수도
지금 결단이 韓 경제의 성장 가능성 좌우해

허정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허정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미국이 8월 1일부터 한국산 전 품목에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한다는 서한을 보내왔다. 단순한 경고로 봐서는 안 될 것이다. 이미 베트남은 미국산 농산물, 항공기 구매 등을 조건으로 20% 관세율이라는 타협안을 만들었고, 인도네시아도 대규모 대미 구매와 투자 약속을 통해 관세율을 당초 제시한 32%에서 19%로 낮췄다. 미국은 한국에도 동일한 프레임을 적용할 것이다. 협상에 실패할 경우 관세율은 25% 혹은 그 이상일 수도 있다.

현재 한국 기업들은 이미 철강과 알루미늄에 50%, 자동차에 25%의 품목관세를 맞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번 서한은 설상가상 한국 전체 수출품에 평균적으로 25%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통보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와 기업들에 큰 타격이 될 것이다.

이번 협상에서 가장 민감한 교환 카드는 농업이다. 쌀, 소고기, 사과, 감자 등 국내 소비자와 농민의 정서가 걸린 품목들이 줄줄이 협상 테이블 위에 오르고 있다. 특히 30개월령 이상 소고기, 유전자변형생물체(LMO) 감자, 33년째 검역 문턱을 넘지 못한 미국산 사과 등은 미국이 오랫동안 개방을 압박해 온 분야다. 이 때문에 농림축산 관련 당국자의 협상 참여만으로 미국의 입장 변화를 이끌어내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이 농산물 카드를 굳게 쥐고 버티는 것이 과연 경제적으로 이로운 일일까? 한국은 2024년 대미 수출액 1283억 달러(약 178조1800억 원)를 기록했다. 만약 평균 25% 상호관세가 부과된다면, 최대 약 321억 달러를 관세로 내야 할 수 있다. 물론 실제 손실은 관세 전가율, 수출 감소율, 환율 조정 등을 고려해야 하지만, 베트남처럼 20%로 낮출 경우 최소한 수십억 달러 규모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2024년 한국의 농업직불금 예산(약 18억 달러)보다 더 큰 규모의 수출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농업 개방으로 인한 재정적 비용과 관세 인하로 인한 수출 편익 간 비교는 협상의 판단 근거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기회비용은 농업 부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산 고품질 철강은 미국에서 수요가 높아 3월 25% 관세를 부과했을 때도 일정 수준의 수출을 유지했다. 하지만 관세를 6월 50%로 올리면서 급격한 타격이 예상된다. 이미 5월 대미 철강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16.3% 감소했고, 하락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는 미국 내 생산 확대 외에는 뚜렷한 대응 수단이 없다.

반도체는 또 어떤가. 삼성과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에서 글로벌 1, 2위 기업이고, 2024년 한국의 대미 수출액만 107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국가안보를 이유로 반도체와 의약품에 대해 초고율의 관세 조치를 검토 중이며, 단계적으로 수백 % 인상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이는 그저 관세 인상이 아니라, 생산기지 이전이나 공급망 재편까지 강제할 수 있다는 조치다. 산업 공동화가 우려된다.

투자도 중요한 교환 카드다. 인도네시아는 관세율을 19%로 낮추는 대신 미국산 항공기 구매와 에너지 계약, 현지 생산기지 구축 등을 약속했다. 일본은 최근 무려 4000억 달러에 달하는 대미 투자 플랜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으로선 다른 국가와의 관세 협상에서 참고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에도 유사한 수준의 제조업, 조선, 방산, 에너지 관련 투자 확대를 요구하는 기류가 느껴진다. 한국이 주저한다면 더 높은 관세와 낮은 시장점유율이라는 기회비용을 떠안게 될 것이다.문제는 정치적 제약이 협상단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이다. 농민단체의 반발, 광우병 시위의 기억, LMO 안전성 논란 등으로 유연한 협상은 쉽지 않다. 그러나 각국이 농산물을 일부 양보해 주요 산업을 지켜낸 사례들을 보면, 특정 분야를 절대 영역으로 고수하는 전략은 오히려 더 큰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이번 협상에서 실패할 경우 세 겹의 기회비용이 누적된다. 첫째는 이미 현실화된 철강, 자동차 등 품목관세의 지속적 부담이고, 둘째는 상호관세 25%의 일괄적 부담이며, 셋째는 반도체 등 전략산업에 대한 추가 고율관세와 공급망 재편에 따른 구조적 비용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선 내어줄 수 있는 것을 분별력 있게 내놓아야 한다. 반대로 협상에 성공할 경우 베트남, 인도네시아처럼 관세율을 20% 안팎으로 낮출 수 있고 산업별 예외를 확보하거나 대미 투자를 통해 장기적 경제협력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협상 시한이 거의 다 됐다. 지금 결단을 유예하면 그 기회비용은 기업과 일자리, 그리고 한국경제의 성장잠재력에 청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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