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보다 민생, 실용이 우선이다.”
이재명 정부는 실용주의를 핵심 국정 운영 원리로 내세우고 있다. 실제로 이재명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오직 실용 정신에 입각해 경기 회복과 경제 성장에 나서겠다”고 천명하고 대통령실 경제비서관 명칭도 아예 경제성장수석, 성장경제비서관으로 바꾸며 경제 성장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성장동력을 상실하며 경제 추락의 경고등이 켜진 현 상황에서 나온 경제 성장 비전이어서 일단 대환영이다.
사실 한국 경제에 비상등이 켜진 지 오래다. 급기야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기존 전망치의 거의 절반 수준인 각각 0.7%, 0.8%로 대폭 낮춰 잡기까지 했다. 더욱 큰 문제는 잠재성장률 하락에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머지않아 1% 아래로 떨어지고, 2040년부터 마이너스로 추락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장기적으로도 경제 상황이 악화 일로에 놓여 있다는 의미다.
이 대통령이 내놓은 첫 번째 경제 처방전은 민생 지원금이다. 각 가정에 소비쿠폰을 제공해 경기 침체로 팍팍해진 살림에 보탬을 주고, 소비 증가를 유발해 경기 회복을 유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논란은 많지만 당장 발등에 떨어진 경기 침체에 대한 실용적 단기 처방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민생 지원금은 소비를 일시적으로 증가시켜 반짝 경기 회복에는 도움이 될지언정 근본적인 경제 성장에는 무용지물에 가깝다. 일반적으로 일회성 소비 증가는 자본의 양을 늘리는 투자와 기술 혁신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 성장은 생산에 투입되는 노동과 자본의 양이 늘어나거나 기술 혁신으로 생산성이 향상될 때만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노동력은 저출생, 고령화,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빠른 감소가 확실시되고 있고, 각종 규제, 불확실성, 반기업 정서 등의 이유로 자본 증가도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제 성장은 기술 혁신, 자원 배분의 효율성 향상을 통해서만 가능해 보인다. 기술 혁신을 이끌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 개혁과 노동을 비롯한 한정된 자원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높이는 노동 개혁 및 금융 개혁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이 대통령은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두 번째 경제 처방을 서둘러 내놔야 한다. 이는 개혁 과제를 분명히 밝히고, 이를 집권 기간에 추진할 구체적인 로드맵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실용주의에 기반한 경제 성장 의지를 국민이 신뢰할 수 있다. 개혁은 정치적 셈법으로는 추진하기 어려운 국정 과제다. 개혁에 따른 잠재성장률 개선 효과는 임기 이후 장기적으로 나타나는 반면 개혁 과정에서 수반되는 구조조정의 고통은 임기 내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지도자의 결단력과 리더십이 진정한 시험대에 오른다.
하지만 새 정부는 아직 이렇다 할 개혁 청사진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번에도 개혁에 앞서 정치적 셈법을 내세운다면 새 정부의 실용주의는 그저 편리한 수사에 그치고 만다. 그리스어로 실용은 실제 경험과 실제로 도움이 되는 행위를 뜻하는 ‘프라그마(pragma)’다. 경험은 사람마다 다르고, 실제로 도움이 될지는 지극히 주관적 판단의 영역이므로, 실용은 각양각색의 의견으로 표출될 수 있다. 여기에 민주적 의견 수렴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정치를 끼워 넣으면 실용주의는 바로 인기영합주의로 떨어지기 십상이다. 개혁은 결코 인기영합주의와 동행할 수 없는 상극 관계다. 새 정부의 실용주의는 정치와 헤어질 결심에서 시작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