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부메랑 돼 돌아온 의료기기 건보 저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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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부메랑 돼 돌아온 의료기기 건보 저수가

“필수 치료재료(소모성 의료기기)가 공급되지 않으면 환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됩니다.”

7월 한 달간 ‘위기의 K의료기기’ 기획 시리즈를 취재하며 의료진에게 수도 없이 들은 말이다. 이번 기획은 정부의 가격 통제로 인해 의료기기 업체가 줄지어 한국 시장을 떠나는 상황을 짚었다.

한국은 ‘저렴한 의료비’를 유지하기 위해 비정상적인 건강보험 수가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업체는 치료재료 수가가 2000년도와 동일하다고 전했다. 오히려 오랜 기간 사용했다는 이유로 수가가 깎인 품목도 많다. 한 업체 관계자는 “20년 동안 의료기기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인건비, 재료비, 물류 비용이 다 올랐다”며 “그런데도 20여 년 전 가격을 고수하니 기업들이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올해 들어 4월까지 공급 중단된 치료재료만 해도 44건. 이미 지난해 전체(16건)의 세 배에 육박했다.

저수가의 부메랑은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오고 있었다. 소아 척추측만증 수술은 중단됐고 심장수술, 수두증 등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의 수술 역시 언제 멈춰 설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최신 기술 의료기기도 제대로 가격을 책정받지 못해 도입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환자들이 20년 전 의료기기에 의존해 수술대에 오른다는 것도 취재를 통해 확인됐다. 좋은 품질의 치료재료를 공급하는 업체들이 빠져나가니 중국, 동남아시아 수입 제품이 한국 의료시장을 장악했다. 그만큼 품질 사고도 늘어났다.

기사가 나간 이후 대구 지역의 한 소아외과 교수는 “입으로 음식을 먹지 못해 위로 영양 공급을 받아야 하는 소아 환자에게 필요한 ‘위루술(PEG)용 카테터’도 병원에 들어오지 않은 지 꽤 됐다”며 “카테터가 있으면 간단한 시술로도 영양 공급관을 삽입할 수 있지만 이제는 개복수술로 위를 잘라 관을 삽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경우 수술 후 회복 시간도 더 오래 걸리고, 위산이 샐 수 있는 위험도 있다고 했다. ‘저렴한 의료’가 곧 ‘위험한 의료’가 된 셈이다. 의료기기업계는 치료재료 가격을 적어도 매년 물가 상승률 수준으로라도 올려달라고 호소한다. 그것도 안 된다면 환자들이 좋은 치료재료를 선택할 수 있는 길이라도 열어달라고 하소연한다. 대만은 환자가 비싼 치료재료를 사용하길 원하면 일부 가격만 보험으로 보상해주고 나머지 금액은 환자가 직접 지불하도록 하는 참조가격제를 운용하고 있다.

필수 치료재료가 공급되지 않으면 결국 필수의료가 붕괴된다. 새 정부가 무너져가는 필수 치료재료 시장을 살리기 위해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비정상적인 건보 수가제도를 수술대에 올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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