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그만 게 무슨!” 말고 “네 마음이 어땠어?” 물어보세요 [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1 week ago 3

〈222〉 걱정과 고민이 너무 많은 아이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걱정이 많은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를 만났다. 다른 아이들이라면 그냥 지나치는 수많은 일들을 이 아이는 지나치게 오랫동안 생각했다. 아이는 사건 사고가 가득한 뉴스를 보면서도, 수업 시작 직전까지 아이들이 떠드는 모습을 보면서도 걱정했다. 뭔가 결정을 해야 하는 일들 앞에서는 여러 걱정으로 고민이 많았다. 아이는 “다른 친구들은 이런 걱정을 안 하는 것 같은데, 왜 나는 만날 머릿속에 생각이 많은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아이에게 뭐가 그렇게 걱정이고 고민인지를 하나하나 물었다. 아이는 뉴스를 보면 나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불안하다고 했다. 세상에는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사람들의 행동을 다 고쳐놓기는 어렵다. 통제하기도 어렵다. 아이에게 이런 얘기를 해줬더니 아이는 미래가 암울하다고 느꼈는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럼 어떡해요?”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나에게 주어진 삶을 그저 내 자리에서 열심히 살 뿐이지. 그런데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옳은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 힘이 더 커져서 세상의 나쁜 것들, 악들도 좀 희석되게 된단다”라고 말해줬다.

아이는 수업 시간 전에 반 친구들이 떠들면 화가 난다고 했다. 어쩌다 선생님이 잠시 자리를 비워도 반이 금세 난장판이 된단다. 아이는 친구들의 그런 행동들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라고 물었다. 아이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런 문제는 명확히 무엇이 옳고 그른지 답이 있다. 반 아이들이 떠들지 않으면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반 친구들이 그 원칙에 따라야만 내 마음이 편안해진다면 생각은 좀 해봐야 한다. 내가 옳고, 내가 좀 더 규칙을 잘 지키는 것이 맞더라도 우리는 상대의 행동을 모두 통제할 수 없다. 자신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다. 따라서 그 책임은 상대의 몫이다. 아이에게 이렇게 설명해줬다.

“옳지 않은 행동으로 남에게 아주 많은 피해를 주거나 누군가를 위험하게 하거나 법을 어기거나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절대 안 되지. 하지만 옳지는 않은데, 사람들이 많이 하는 행동들이 있어. 그것에 대해서 네가 너무 속이 상하거나 화가 난다는 것은, 어쩌면 옳음을 통해서 옳지 않은 사람들 위에 서고 싶어 하는 것일 수도 있어. 네가 옳아도 다른 사람을 밟고 그 위에 서려고 해서는 안 되는 거야.”

사실 어른들에게도 어려운 개념이기는 하다. 아이는 가만히 이야기를 듣더니 뭔가 깨달은 듯 연신 고개를 끄떡였다.

아이는 마지막으로 우리가 흔히 ‘결정장애’라고 일컫는 고민을 말했다. 급식에서 나온 소시지를 세 개 담을지, 네 개 담을지도 고민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결정은 고민을 많이 하는 것이 맞다. 많이 고민되면 다른 사람의 의견도 들어야 한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결정해도 크게 문제가 안 되는 것은 어떤 결정이든 해도 된다. 아이는 괴로운 표정으로 그 어떤 결정이든 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아이에게 다시 정리해줬다.

“잘못된 결정을 해도 된다는 거야. 소시지를 세 개 먹을까, 네 개 먹을까가 고민이라면 오늘은 세 개를 먹는 거야. 먹어보니 좀 아쉬웠어. 그러면 다음에는 네 개를 먹으면 되는 거지. 일상에서의 결정은 그렇게 겪어가면서 배워가면 되는 거야.” 아이가 매사 걱정이 많고 고민한다고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생각이 많은 것은 좋은 것이다. 인간은 생각을 통해서 배우고, 많은 것들을 바꿔 나갔다. 세상도 변화시켜 왔다. 생각을 통해 반성도 하고 창의성도 생겨났다. 단, 생각이 많아지면서 마음이 너무 괴롭다면 그 생각들은 좀 줄어들게 해야 한다.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은 마냥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가 “저, 고민이 너무 많아요”라고 말하면 그 고민이 아이의 마음을 지나치게 괴롭게 하는지부터 살펴보자. 그냥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발전해 나가는 것이라면 “네가 좋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생각이 많은 네가 멋지구나”라고 칭찬해주면 된다. 만약 그 고민으로 너무 괴로워한다면 “쪼그만 게 무슨 고민이야”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말고, “무슨 생각이 들어서 그래? 그럴 때 네 마음이 어때?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어? 그럴 때는 너는 어떻게 해? 그게 좀 도움이 되니?” 식으로 두런두런 대화를 나눠봤으면 한다. 의외로 아이들은 부모와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괴로움이 많이 덜어진다.

오은영 오은영의원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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