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주유소를 철거해 본 경험이 없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에도 지하에 연료 탱크를 묻는 형태의 주유소가 전국에 200개 정도 생겨났다. 가뜩이나 모자란 주유소인데 짓자마자 철거할 일은 없었다.
게다가 금강산 주유소는 부실한 자재와 저급한 기술로 지은 것이 아니라, 현대가 1998년 11월부터 3개월 동안 세운 것이다. 북한에 건설되는 첫 한국 주유소라는 상징성 때문에 허술하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북한이 아는 유일한 철거 방법은 폭파시킨 뒤 건물 잔해를 내다 버리는 것이다. 북한은 쌓아 올리는 건 많이 해도 파내는 건 거의 하지 않았다. 뭐든 부족하니 기존 건물은 그대로 놔 두고 빈 땅에 새로 건설하는 데만 익숙하다. 그나마 평양처럼 부지가 부족한 곳에선 기존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짓기도 한다. 다만 그들이 철거해 온 건물은 대개 1950년대에 ‘평양 속도’라고 포장하며 날림으로 지은 것이 대부분이라 기둥 서너 군데를 폭파하면 풀썩풀썩 무너진다.그런 북한이 금강산에서 맞닥뜨린 것은 차원이 다른 철근 콘크리트 구조다. 그것도 그냥 무너뜨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콘크리트와 내부 탱크를 뜯어내는 작업이었다. 어쨌든 김정은의 명령이 하달됐으니 군인들은 유일하게 아는 발파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콘크리트가 어찌나 단단한지 폭약 넣을 구멍 뚫기도 쉽지 않았고, 폭파해도 뜯겨 나오는 양이 보잘것없었다. 껍질을 벗기듯 뜯어내고 또 뜯어내는 작업은 반년 넘게 진행됐다. 온정리 사람들은 지난해 여름 발파 소리를 수없이 들어야 했다. 한국은 웬만한 철거업체에 몇천만 원만 주면 일주일 안에 주유소 하나를 금방 뜯어내겠지만 북한은 경험도, 장비도 없다.
더욱이 그들이 금강산에서 뜯어내야 할 것은 주유소뿐만이 아니었다. 2019년 10월 23일 금강산을 방문한 김정은은 “보기만 해도 기분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싹 들어내고 현대적인 봉사 시설들을 우리 식으로 새로 건설하라”고 지시했다. 김정은은 한국이 지은 관광시설들을 ‘건설장 가설 건물을 방불케 하는 집들’ ‘피해 지역 가설막이나 격리병동’ 등에 비유하며 폄훼했다.김정은 특유의 허세도 빠지지 않았다. 그는 “우리 설계 역량도 튼튼하고, 강력한 건설 역량이 있으며 당의 구상과 결심이라면 그 어떤 난관과 시련도 뚫고 무조건 실현하는 우리 군대와 노동계급이 있기에 금강산에 세계적인 문화관광지를 꾸리는 사업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큰소리쳤다.
그런데 세계적인 문화관광지는커녕 가설막이나격리 병동 같다던 건물 몇 동조차 아직까지도 완전히 들어내지 못했다. 한국이라면 영세 업체라도 쉽게 끝낼 일을 ‘최고존엄’ 김정은의 지시에도 6년째 끝내지 못하고 쩔쩔맨다.
그동안 건물 하나하나 해체될 때마다 동원된 많은 군인과 금강산 주민들 입을 통해 북한에는 차원이 다른 한국 건설에 대한 신화들이 생겨났다. 건물을 보기만 했던 것과 해체하면서 느끼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경험이다.
한국 건설에 대한 신화는 비단 금강산에서만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2020년 6월 13일, 김여정은 한국을 향해 “머지않아 쓸모없는 (개성공단) 북남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협박했다.나흘 뒤 북한은 진짜로 이 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했다. 폭약을 얼마나 썼던지 70m 떨어진 15층짜리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 건물 유리창이 다 박살 났다. 하지만 정작 형체도 없이 무너뜨리겠다던 건물은 높이 솟구쳤던 폭파 먼지가 가라앉은 뒤에도 꿋꿋이 서 있었다.
전 세계가 보라고 진행된 ‘폭파 쇼’에 동원됐던 북한 최고 공병들은 경악했을 것이다. ‘도대체 이 건물은 어떻게 지었기에 이 정도 위력의 폭발을 견딘단 말인가. 형체도 없이 무너뜨리라는 지시를 집행하지 못한 우리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연락사무소 건물이 수작업을 통해 완전히 사라진 것은 4년 뒤인 지난해 3월이다. 종합지원센터는 지금도 철거 공사가 진행 중이다.
금강산 주유소와 개성공단 연락사무소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죽었으되 죽지 않았으니, 북한이 즐겨 쓰는 표현을 빌린다면 ‘죽어서 더 빛나는 전설의 이름’이 됐다.
주성하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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