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에서 마주친 ‘싫어하는 일’의 중요성 [2030세상/박찬용]

1 week ago 5

박찬용 칼럼니스트

박찬용 칼럼니스트
유망하거나 안정적인 직업을 얻기 위해 노력하던 친구들과 달리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기로 했다. 나는 잡지를 좋아했다. 긴 페이지의 호흡 안에 미세한 요소를 넣는 게 좋았다. 원고뿐 아니라 디자인이나 사진 등 다양한 요소로 페이지를 만들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이 좋았다. 크고 굵직한 이야기들보다 덜 중요해도 의미 있어 보이는 일에 눈이 갔다. 거의 모든 주변 사람들이 나를 말렸다. 나는 개의치 않았다.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이었으니까.

그 좋아하는 일을 시작한 후 내내 나의 실질적인 직무는 거의 내가 안 좋아하는 일이었다. ‘안 좋아하는 일’이란 때로는 소재이기도 했고 때로는 일을 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예컨대 나의 편집자적인 관심사와 달리 실제로 내가 오래 담당한 분야는 고급 손목시계, 남성 지향 전자제품, 연예인 인터뷰 같은 일이었다. 성인용 칼럼처럼 그때 어떻게 했나 싶은 아찔한 걸 담당하기도 했다. 하기 싫어서 직업을 바꾸고 싶기도 했다. 그때는 이미 여러모로 너무 늦어 있었다.

경험 속에서 나는 내 실책을 깨달았다. ‘좋아하는 일’의 어폐에 대해서. 직업인이 되기 전 내가 생각한 일은 단순히 소재였다. 잡지라거나 페이지라거나. 그런데 실제로 일을 해보니 일은 점이 아니라 선에, 면이 아니라 입체적인 형태에 가까웠다. 내가 꿈꾼 잡지와 에디터 일이 요리된 음식이었다면 내가 실제로 한 일은 주방에서의 대량 조리였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 상상했던 건 그 일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했음을, 나는 이 일을 실제로 해 보고서야 깨달았다.

버틸 수밖에 없던 시간 속에서 새로운 게 보이기 시작했다. 싫어하는 일에도 도(道)와 재미가 있다. 오히려 나는 내가 싫어하는 일들 사이에서 성장했다. 일례로 나의 수입 중 일부는 한때 내가 그렇게 하기 싫어하던 시계 부문에서 발생했다. 기획에서 출고까지 이르는 지면 콘텐츠 제작 실무도 마찬가지다. 직장 다닐 때는 매운 야식을 먹어가며 꾸역꾸역 했던 고통스러운 일들이 지금 내 삶과 일에 큰 도움이 된다.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격려는 늘 있다. 전생부터 웃고 있던 듯한 인상의 사람들이 눈을 크게 뜨고 ‘꿈을 따르라’고 한다. 나는 하고 싶던 일을 하며 아직까지는 살아남아 있으나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 내가 지금까지 이 일을 할 수 있는 비결은 행운이고, 그건 좋아하는 일로 성공한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창작이나 문화산업에서는 변수가 너무 많다. 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그 모든 걸 헤쳐 나가기는 너무 어렵다.

오늘의 나는 무슨 일을 하는지보다 어떻게 일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성공의 기준은 여럿이다. 하고 싶은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일이 어떤 것인지는 실제로 그 영역 안에 들어가봐야 알 수 있으며, 실전에 투입되기 전 일에 대한 상상은 모두 무의미하다. 나도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싫어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지금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무슨 일을 하든 싫어하는 부분과 마주할 것이다. 그리고 그 부분에서 중요한 걸 찾아내야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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