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를 찾다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인터뷰 내용을 접했다. 국립민속박물관에 전통 낚시 도구 1000여 점을 기증한 분의 증언에 따르면, 1960년대까지 한강 나루마다 얼음낚시 계조직이 있었다고 한다. 얼음 아래에 그물을 치고 막대기로 두드려 물고기를 몰아넣으면 낚시꾼들이 몰려들었단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낚시꾼들은 빙판을 뚫고 삼봉낚시를 했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 얼음낚시 계조직이 유료 낚시장을 운영한 것은 알고 있었으나, 1960년대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에는 의문이 들었다.
이런 어로 방식을 서유구는 ‘전어지’(1840년경)에서 소개하고 있다. “사람들이 각자 나무 몽둥이를 들고 하류의 먼 곳에서 얼음을 두드리면, 소리에 놀란 물고기가 달아나다가 그물을 둘러놓은 안으로 들어간다. 그물 위 얼음에 구멍을 뚫어 물고기가 지나가면 찔러서 잡는다.” 이로부터 40여 년 후, 미국인 퍼시벌 로런스 로웰이 빙판에서 물고기를 잡는 모습이 인상 깊었는지, 동일한 장면을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기록했다. 그는 “물속에 그물을 치고, 얼음 위에 일정한 간격의 구멍을 뚫어 낚시를 드리웠다. 사람이 낼 수 있는 가장 요란한 소리를 내면, 놀라서 우왕좌왕하던 잉어가 그물에 막혀 허둥대다 미끼 없는 훌치기낚시에 걸렸다. 낚시는 각이 진 세 개의 갈고리로 되어 있다”라고 했다.
일제강점기에도 이와 같은 낚시법이 이어졌음을 대한제국 농상공부가 1911년 펴낸 ‘한국수산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얼음 아래로 그물을 내려 그물의 중앙부를 조금씩 끌어올려 고기 길을 만든다. 준비가 끝나면 사람들은 몽둥이로 얼음판을 두드려 고기를 놀라게 하여 하류로 몰아간다. 물고기가 그물의 포위 안으로 들어가면 물고기 길을 막아 어장을 축소시켜 낚시로 잡기 쉽게 만든다. 얼음판 위에 구멍을 뚫고 ‘삼봉’이라고 부르는 낚시로 낚아 올린다.” ‘머리계’라고 부르는 14, 15인과 우두머리인 ‘영좌’가 나서서 그물 주인과 협의해 잉어 그물을 설치했다고 한다. 입장료를 내고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많을 때는 1000명을 넘었단다.자료를 추적하던 중, 전통 낚시 도구를 기증한 분의 말을 뒷받침하는 글을 발견했다. ‘江과 고락 나눈 바당(팔당) 마을’(경기일보, 2003년 3월 6일)이라는 제목의 투고문으로 “두미강(斗尾江)에서 ‘머리계’라고 불리는 어업계 조직을 결성해 그물바탕을 만들고, 겨울철에 잉어낚시 판을 벌였다. 잉어잡이를 총지휘하는 우두머리를 두레 조직과 마찬가지로 ‘영좌’라고 불렀다. 그의 명령에 따라 그물을 드리우는 일, 커다란 나무망치로 얼음장을 내려치며 잉어를 한쪽으로 모는 일, (중략) 준비가 끝나면 낚시꾼들이 몰려든다”라고 했다. 팔당댐 건설로 물길이 막히면서 두미강 머리계는 사라졌다. 겨울이면 한강 곳곳에서 펼쳐지던 유료 낚시장은 1960년대까지 이어지다가 막을 내렸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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