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이 휘몰아치고 있다. 국회는 지난달 본회의에서 검찰청 폐지 등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수정안을 여당 주도로 의결했다. 더불어민주당 사법개혁특별위원회는 최근 대법관 증원 등의 내용을 담은 자체 사법개혁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많은 국민은 이런 일련의 행보를 정치적 이해와 연결해 바라보는 게 현실이다.
한국갤럽의 최근 설문 조사 결과, 검찰청 폐지 관련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대한 평가는 응답자의 정치 성향에 따라 극명하게 갈렸다. 정치 성향이 진보라고 답한 이들 중 82%가 찬성 뜻을 밝혔지만, 보수층에선 찬성이 19%에 불과했다. 정권은 ‘국민의 명령’이라고 하지만, 다수 국민 눈에는 정치적 의도로 비친다. 개혁에 대한 국민 체감도가 그만큼 떨어지는 탓이다. 민생이 체감하는 ‘소프트웨어 개혁’이 동반돼야 하는 이유다.
별건 수사와 피의사실 공표 관행이 대표적이다. 본건과 무관한 사건이나 인물까지 포괄하는 수사 방식은 오랫동안 권력 남용의 도구였다. 여기에 피의사실 공표와 언론 플레이가 더해지면 재판 이전에 이미 여론이 판결을 대신한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의 시세조종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가 이례적으로 “본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별건을 강도 높게 수사하는 방식은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 이제는 지양돼야 한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검찰 개혁의 진정성은 범죄의 단일성과 동일성을 벗어나는 수사를 봉쇄하는 ‘별건 수사 금지법’ 같은 실질적 제도로 입증해야 한다.
검사의 항소와 상고 등 상소 남발도 고질적이다. 대법원 사법연감 통계가 보여주듯 상고심 접수 건수가 급증해 대법원 적체는 한계에 다다랐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1심 형사공판 사건의 항소율은 2023년 48.1%로, 10년 전(2013년) 34.2%보다 10%포인트 이상 뛰었다. 1심 사건 중 절반이 2심 판단을 받는 셈이다. 항소 주체별로는 검사 측이 63%, 피고인이 47.8%의 항소율을 나타냈다. 문제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판결을 뒤집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면책성 항소’라는 점이다. 이 결과 대법원은 사소한 사건들로 포화 상태가 되고, 국민은 ‘정의의 지연’이라는 대가를 치른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국무회의에서 “검사들이 되지도 않는 걸 기소해서 무죄가 나오면 면책하려고 항소하고, 상고하면서 국민에게 고통을 준다. 왜 방치하느냐”고 질타하기도 했다.
이런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구조적이다. 상소가 기각돼도 인사상 불이익이 없다. 민간 기업처럼 검사 인사평가에 ‘상소 성공률’을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무리한 상고를 반복하면 불이익을 주고, 정당한 승소에는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한다.
무고는 민생을 짓누르는 보이지 않는 폭력이다. 억울한 고소를 당한 사람은 수년간 재판에 시달린다. 판결이 내려질 즈음엔 이미 모든 것을 잃은 뒤다. 이런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무고죄다. 그런데 2022년 기준 검찰이 접수한 무고 사건은 1만2870건에 달했지만, 기소율은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한국의 무고죄 성립 요건이 엄격하고, 현장에서 내려지는 평균 형량도 현저히 낮아서다. 허위 고소가 드러나면 강력 처벌하고, 피해자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을 자동 연계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전관예우는 사법 불신의 가장 뿌리 깊은 악습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오명만 벗겨내도 대부분 국민은 개혁 방향에 공감할 것이다. 국민이 요구하는 사법개혁은 단순한 하드웨어 개편이 아니다. 체감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혁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개혁은 명분과 지지를 얻는다.

1 week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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